설(說)은 이치에 따라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한문 문체이다. 뜻과 이치를 해설하는 데에 자기의 견해를 분명히 하면서, 자유롭고 또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설의 문체는 중국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후기까지 꾸준하게 설 문체로 서술한 작품이 창작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설의 문체는 직서적인 설과 우언적인 설 2가지로 크게 구분되고, 그 내용 및 제재에 따라 총 15가지로 분류된다.
설(說)은 글자 뜻이 말하듯이 해석과 서술을 주로 하는 문체이다. 다시 말하여 설은 뜻과 이치를 해설하는 데에 자기의 견해를 분명히 하면서, 자유롭고 또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논(論)의 문체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설'이라는 명칭은 본디 『주역(周易)』 '설괘(說卦)'에서 시작되었다. 한(漢)나라 때의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의 명칭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는 동안 설의 이름을 가진 것은 조식(曺植)의 문집 가운데 2편뿐이다. 『문선(文選)』에서는 설의 문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당(唐)나라 때 고문 운동에 편승하여 비로소 설의 문체가 새롭게 창안되었다. 한유(韓愈)의 「잡설(雜說)」 · 「사설(師說)」을 비롯하여 유종원(柳宗元)의 「골설(鶻說)」 · 「포사자설(捕蛇者說)」 · 「승부설(乘桴說)」 · 「적룡설(謫龍說)」 · 「웅설(熊說)」 등이 대표적이다. 「사설」과 같이 직유적인 설도 있으나 대체로 은유적인 설이 많다. 「잡설」에서는 지우(知友)의 어려움을 천리마와 백락(伯樂)의 관계에 빗대어 다루었고, 「포사자설」에서는 폭정의 혹독함을 뱀이나 범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비유하였다. 그리하여 설의 문체는 우의적인 작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송(宋)나라 때의 소순(蘇洵)에 이르러 기존의 설체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설체가 등장하였다. 이는 「명설(名說)」 · 「자설(字說)」로서, 「중형자문보설(仲兄字文甫說)」 · 「명이자설(名二字說)」 등에 나타나 있다. 이 문체는 어떠한 이름을 짓게 된 이유를 해설하는데, 여기에는 이름을 보며 그 뜻을 새기는 이른바 고명사의(顧名思義)를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대부분 문장이 간결한 것이 특색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설의 문체는 직서적인 설과 우언적인 설 2가지로 크게 부분되며, 그 내용 및 제재에 따라 총 15가지로 분류된다. ① 독후설(讀後說), ② 명자설(名字說), ③ 문자설(文字說), ④ 경설(經說), ⑤ 성리설(性理說), ⑥ 의례설(儀禮說), ⑦ 경연설(經筵說), ⑧ 당재설(堂齋說), ⑨ 사물설(事物說), ⑩ 시문설(詩文說), ⑪ 계훈설(戒訓說), ⑫ 강설(講說), ⑬ 몽설(夢說), ⑭ 불설(佛說), ⑮ 잡설(雜說)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 명설(名說) · 자설(字說) 두 가지 문체가 어느 경로를 통해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문체는 한유나 유종원을 배운 것이다. 처음으로 우리 문헌에 보인 것은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문집에서이다. 여기에 「경설(鏡說)」 · 「주뢰설(舟賂說)」 · 「슬견설(虱犬說)」 · 「뇌설(雷說)」 등 다수의 설 문체가 수록되었다. 모두 우의적인 작품이다. 「경설」은 깨끗한 거울과 더러운 거울의 두 가지 중에 더러운 거울의 경우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서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순을 배운 명설 · 자설 · 호설(號說)도 계속 유행했다. 분량으로 따지면 자설이 제일 많고 다음이 호설이다. 명설은 희귀한 편이다. 자설은 고려시대 이곡(李穀)의 「경보설(敬父說)」 · 「심보설(深父說)」에서 비롯되었고, 호설은 백문보(白文寶)의 「율정설(栗亭說)」 · 「척약재설(惕若齋說)」에서 비롯되었다. 명설은 조선 초기 하륜(河崙)의 「명자설(名子說)」에서 시작되었는데 설리적(說理的)인 설체에 비하여 간결한 단편이라는 것이 특색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설의 작품이 많다. 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訓子五說)」, 권호문(權好文)의 「휵묘설(畜猫說)」, 이식(李植)의 「교송설(矯松說)」, 김매순(金邁淳)의 「작치설(鵲鴟說)」, 이건창(李建昌)의 「응설(鷹說)」 등이 명작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