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周禮≫ 춘관편(春官篇)에 “소사가 나라의 기록을 맡는다(小史掌國之志).”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지가 문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한서 漢書≫ 10지(志)이다.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을 보면 지는 기사(記事)라 규정하였다. 또 ≪문체명변 文體明辨≫ 기사조(記事條)에 “기사란 지(志)의 별명이니 야사(野史)의 유이다.”라고 한 것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옛날의 사관(史官)들이 사기를 쓰는 데에 있어 당시의 일을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경우가 아니면 사실이 누락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렇게 누락된 사실들을 문인학사(文人學士)들이 보고 듣게 되면 그것을 수시로 적어 두었다가 사관에게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문인이 쓴 대로 기록을 남겨 역사에서 빠지는 부분에 대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름은 다르지만 역사적 사실을 적는 것은 같은 것이다.
우리 나라 ≪삼국사기≫에도 지(志)의 항목이 있다. 세목이 <제사 祭祀>·<악 樂>·<복색 服色>·<거기 車騎>·<기용 器用>·<옥사 屋舍>·<지리 地理> 등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정사(正史)에 모두 기록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인학사들의 지(志)가 그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게 된 것이다.
이규보(李奎報)의 <소금각배지 素琴刻背志>·<계양망해지 桂陽望海志>를 비롯하여, 이숭인(李崇仁)의 <진맥도지 診脈圖誌>, 권근(權近)의 <천문도지 天文圖誌> 및 <역대제왕혼일강리도지 歷代帝王混一彊理圖誌> 등이 바로 지(志)이다.
그러나 비록 지(志)라 해도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식(李植)의 ≪택풍당지 澤風堂志≫의 경우에는 기(記)와 마찬가지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기와의 차이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기는 서술대상의 시말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시하는 것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지는 서술대상에 얽힌 숨은 사연이나 내용, 특히 거기서 받은 경험이나 교훈 등을 간략하게 기술하는 것이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