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평상·연상·걸상·책상·제상 등을 통틀어 지칭한다.
중국 문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고려나 조선 후기의 상류층에서는 상이란 신체와 직접 관련되어 사용되는 기물, 즉 평상·호상(胡床) 등을 지칭할 때 사용하였다.
음식물을 놓는 기물은 상이라는 말 대신에 형태나 높이에 따라 조(俎)·반(盤)·탁(卓) 등으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또, 책이나 서류 등을 올려놓는 기물은 안(案)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 이후 상이란 주로 밥상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상은 일반적으로 발이 달렸고 그 위에 판판한 널이나 살 등을 대어 만들며, 얕은 전이나 난간을 두르기도 한다. 재료는 금속·목재·죽재·석재·도자기 등으로 만들며, 용도에 따라 가죽이나 헝겊을 대는 경우도 있다.
또, 표면에 나전(螺鈿)을 입히고 칠을 하거나 조각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크기는 작은 먹을 올려놓기 위한 소형에서부터 사람이 눕는 침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밥상의 고형(古型)은 1944년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삼족동반(三足銅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상의 모양은 둥글며 안쪽에는 사엽좌문(四葉座文)이 음각되어 있고, 매미형의 발굽을 한 세개의 다리가 붙어 있다.
이러한 모양의 상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도 볼 수 있어, 낙랑시대의 것이 그대로 이어졌음을 말하여주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는 네모반듯한 모양의 말굽사족반도 보이고 있어 둥근형과 네모형의 청동제상이 공존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밖에도 남부지방에서는 토기로 된 둥근 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이 시대에 다양했던 상문화를 말해 주고 있다.
고려시대로 오면 상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졌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기록된 것만 해도 단칠(丹漆)·흑칠(黑漆)을 한 식탁(조류 俎類)을 비롯하여, 연회용 탁자인 연대(燕臺), 연식상(連食床)인 연상(連床) 등이 있다.
상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층 여러 형태로 발달하게 된다. 그것은 유교의 영향으로 예의규범을 중시함으로써 그 쓰임새에 따라 밥상·주안상·돌상·약상·차상·합환주상(혼례용)·신선로상·번상(番床 : 관가에 점심을 나르는 상으로 公故床이라고 함.) 등의 여러 종류의 상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상은 그 크기에 따라 1인용 외상, 2인용 겸상, 3인용 셋겸상, 4인용 넷겸상, 잔치용 교자상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판의 모양에 따라 모난 것은 각반(角盤), 둥근 것은 원반(圓盤)·연엽반(蓮葉盤)·반월반(半月盤), 전체적인 생김새가 다르고 조각 장식이 정교한 별반(別盤), 두레반으로서 정교하며 주칠이 된 궁중 전용의 대궐반(궐반이라고도 함.)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밖에 다리의 모양에 따라 범다리형의 호족반(虎足盤), 개다리형의 구족반(狗足盤), 외다리가 박힌 판의 밑부분에 외다리를 받치는 4개의 다리가 붙어 있는 단각반(單脚盤), 운각이 ‘亞’자 모양인 아자반(亞字盤) 등으로도 구분된다.
그리고 생산지에 따라 통영반(統營盤)·나주반(羅州盤)·해주반(海州盤)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세 가지가 대략 소반의 기본이 되어 약간의 변화를 보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상은 단풍나무와 대추나무로 만든 것이 가벼우면서도 매끄러워 쓰기에 간편하다. 그리고 통판(筒板)을 잘라 만든 것이 좋다. 상의 겉면에 칠해지는 도료는 대개 생옻칠이다. 목적(木賊 : 속새과의 상록다년초)으로 문질러 길을 들여 쓰면 해가 거듭될수록 손길에 절어 붉은색으로 반들반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