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본래 북저(北藷) 또는 북감저(北甘藷)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그 시기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북저변증설(北藷辨證說)에 “북저는 일명 토감저(土甘藷)라 하는데, 순조 24∼25년에 관북(關北)에서 처음 들어온 것이다.”라 하였다. 김창한(金昌漢)의 ≪원저보(圓藷譜)≫에도 “북방으로부터 감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7∼8년이 되는 순조 32년(1832)”이라 한 것으로 미루어 1824∼1825년 사이로 보인다.
감자는 비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가뭄과 장마에도 강하여 그 보급이 매우 빨랐다. 그리하여 1847년(헌종 13)에는 전라·경기·충청·강원지방에까지 보급되어 감자보다 60년이나 빨리 전래된 고구마를 능가할 정도였다. 감자밥이 주식이었던 것으로 보면 감자밥의 시초는 감자가 강원도에 보급된 1847년 이후일 것이다.
감자밥이 감자의 보급과 더불어 쉽게 주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에 이미 연뿌리·고구마·대나무열매 등을 섞어 짓는 구황용(救荒用) 밥이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자밥은 감자를 씻어 껍질을 벗긴 뒤에 통째로 삶는다. 그 위에 미리 불려 놓았던 쌀을 얹고 밥을 짓는다.
만일 물이 부족할 경우에는 쌀이 익을 만큼 보충해 주면 된다. 다 된 감자밥은 감자를 주걱으로 으깨면서 사발에 담아 먹는다. 감자밥을 지을 때는 하얀 분이 많이 나고 질척이지 않는 강원도산이 좋다. 감자의 발아 중에 난 싹은 솔라닌이라는 유독성 물질이 들어 있으므로 반드시 도려내고 사용해야 한다. 감자밥은 감자의 주성분인 탄수화물·단백질·비타민 등이 모두 밥 속에 용해되므로 감자의 영양가를 최대한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영양적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