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릉도감의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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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릉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
유교
문헌
1800년대 산릉도감에서 왕릉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의식과 절차 등을 기록한 의궤.
정의
1800년대 산릉도감에서 왕릉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의식과 절차 등을 기록한 의궤.
개설

현재 국내외에 전해지고 있는 『산릉도감의궤』는 모두 28종인데, 연대순으로 보면 1600년대 8종, 1700년대 7종, 1800년대 12종, 1900년대 1종 등이다.

숙종조에 만든 『산릉도감의궤』는 모두 1책씩으로 되어 있으며, 영조조 이후에 만든 의궤는 대개 2책씩으로 되어 있다.

『산릉도감의궤』 가운데 종합된 체재와 형식을 갖춘 것으로는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의 국장 때 수원 현륭원소(顯隆園所) 안에 건릉(健陵)을 조성한 기록인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 正祖健陵山陵都監儀軌)』이다.

내용

이 의궤는 상·하편 2책으로 되어 있다. 제1책에는 정조의 사망일시 및 장소, 능호의 결정, 봉표일(封標日) 등이 기록되고 이어서 목록이 있는데, 상편에는 시일(時日)·좌목(座目)·전교(傳敎)·계사(啓辭)·서계(書啓)·상전(賞典)·이문(移文)·감결(甘結)·내관(來關)·예관(禮關)·의주(儀註)·반사(頒賜)·재용(財用)·삼물소(三物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책인 하편에는 조성소(造成所)·대부석소(大浮石所)·노야소(爐冶所)·보토소(補土所)·소부석소(小浮石所)·수석소(輸石所)·별공작(別工作)·분장흥고(分長興庫)·번와소(燔瓦所)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책의 첫머리에는 정조가 1800년 6월 28일 유시(酉時)에 창경궁 영춘헌(迎春軒)에서 사망했고, 7월 6일 빈청회의(賓廳會議)를 거쳐 능호를 건릉(健陵)으로 정하고, 7월 15일 수원부 화산(花山)의 제2 청룡(靑龍)에 봉표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목록에 이어 상편의 「시일」에는 그해 7월 6일부터 12월 13일 산릉을 마칠 때까지의 주요 작업 일정을 기록하고 있다.

「좌목」에 의하면, 총호사(摠護使)에 좌의정 이시수(李時秀), 제조(提調)에 서유린(徐有隣) 등 5인, 도청(都廳)에 조윤수(曺允遂) 등 2인, 낭청(郎廳)에 삼물소 담당의 한익진(韓翼鎭) 등 13인, 감조관(監造官)에 조성소 담당의 홍원섭(洪元燮) 등 4인의 명단이 있고, 이밖에 상지관(相地官)·방외지사(方外地師) 등이 차출되어 있다.

「전교」·「계사」·「서계」 등에는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산론(山論)으로 능소(陵所)를 정해 좌향(坐向)과 정혈(正穴)을 재정(裁定)하고, 화소(火巢)·치도(治道)·수호(守護)로 구분, 능역(陵域)의 폭원(幅員)을 획정하며, 석물상설(石物象設)의 종류와 숫자를 정하는 등 능소조성의 대개(大槪)가 일정별로 나타나 있다.

「이문」·「감결」·「내관」·「예관」 등은 도감과 관련 관서(官署)간에 산릉의 역사(役事)를 수행하는 데 필요해 수발한 지시 또는 협조 공문의 내용을 문건(文件)의 성질에 따라 분류, 기록한 것이다.

「의주」에는 산릉에 따르는 모든 절문(節文)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능상각(陵上閣) 등의 조성시에 쓰이는 상량문도 부록되어 있다. 「재용」에는 잡물식례(雜物式例)가 부록되었다.

상편의 「삼물소」와 하편의 「조성소」·「대부석소」 등의 각 소에는 좌목으로 구성 인원의 명단을 기록하고, 각종 도설과 구체적인 작업 내용이 기록되었다.

의궤의 도설은 이 의궤가 만들어지기 이전까지는 통상적으로 제1책 상편의 첫머리에 실려 있었으나, 이 의궤부터는 각소의 해당 편목(篇目)에 분속(分屬)해 수록하고 있다.

「삼물소」의 도설로는 능상각(陵上閣)·능상각입주(陵上閣立柱)·가도리수도각(加道里隧道閣)·녹로(轆轤)·별조녹로(別造轆轤) 등이 있고, 「조성소」의 도설로는 가정자각(假丁字閣)·가정자내배설(假丁字內排設)·찬궁(欑宮)·사수(四獸)·회남수평상(回南首平床)·신어평상(神御平床)·길유궁(吉惟宮)·유문(惟門)·가재실(假齋室)·나인가가(內人假家) 등에 대한 것이다.

「대부석소」에는 면전석(面磌石)·우전석(隅磌石)·장면전석(長面磌石)·장수도석(長水道石)·수도우석(水道隅石)·죽석(竹石)·동자석주(童子石柱)·석주(石柱)·고색석주(古索石柱)·석인(石人)·석수(石獸)·면전우전석연배(面磌隅磌石連排)·전석상안난간석(磌石上安欄干石)·상석(床石)·지석함(誌石函)·전석(磌石)·퇴광배설(退壙排設) 등의 도설이 있다.

또한 채색(彩色)으로 된 정자각도(丁字閣圖)·찬궁도(欑宮圖)·사수도(四獸圖)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산릉도감의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00년(선조 33) 선조비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능을 현 동구릉(東九陵) 소재 선조 목릉(穆陵)의 좌강(左岡)에 조성한 기록인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 1책이 있으나, 보존 상태가 완전하지 못하며 내용도 소략하다.

한편, 의궤의 명칭을 『산릉도감의궤』로 한 경우에도 실제로 천릉(遷陵)이거나 합장을 위해 천봉(遷奉)을 수반한 예가 많았다.

이 『산릉도감의궤』들은 규장각에 대부분 소장되어 있고,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4종이 있다. 기타 국내에 없는 것으로는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경종산릉도감의궤(景宗山陵都監儀軌)』 2책의 1종이 있다. 조선시대 왕릉에 대한 묘제(墓制) 연구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
『조선조의 의궤』(박병선 편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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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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