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
인적 사항
내용
이처럼 순종은 실권을 상실한 허수아비 황제였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소네 아라스케〔曾彌荒助〕를 거쳐 군부 출신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조선 통감으로 부임해 온 후 일본은 대한제국의 숨통을 끊고자 더욱 거센 공작을 펴게 되었다. 일제는 1909년 7월 각의(閣議)에서 ‘한일합병 실행에 관한 방침’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한국과 만주 문제를 러시아와 사전에 협상하기 위해 이토를 만주에 파견하였다. 이토가 하얼빈에서 안중근(安重根) 의사에게 포살(砲殺)되자 이를 기화로 한반도 무력 강점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일제는 이러한 침략 의도에 부화뇌동하는 친일매국노 이완용 · 송병준 · 이용구(李容九) 등을 중심한 매국단체 일진회(一進會)를 앞세워 조선인이 원하여 조선을 합병한다는 미명하에 위협과 매수로 1910년 8월 29일에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을 성립시켜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
평가
순종 주변에는 친일 매국 대신과 친일 내통인만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최고의 수렴자로서의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무력 앞에 종언을 고한 뒤, 순종은 황제의 위에서 왕으로 강등되었다. '창덕궁(昌德宮) 이왕(李王)'으로 불렸고, 왕위의 허호(虛號)는 세습되게 조처되었다. 폐위된 순종은 창덕궁에 거처하다가 1926년 4월 25일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곤도 시로스케, 『대한제국 황실비사 - 창덕궁에서 15년간 순종 황제의 측근으로 일한 어느 일본 관리의 회고록』(이마고, 2007)
논문
- 이왕무, 「1910년대 순종의 창덕궁 생활과 行幸 연구」(『조선시대사학보』 69, 2014)
- 이왕무, 「1917년 순종의 일본 행차[東上]에 나타난 행행의례 연구」(『韓國史學報』 57, 2014)
- 신명호, 「19세기 후반 한‧일 궁중의 후계자 교육 비교연구 - 純宗 황제와 明治 천황이 받은 후계자 교육을 중심으로」(『한일관계사연구』 43, 2012)
- 김대호, 「일제하 종묘를 둘러싼 세력 갈등과 공간 변형-1920년대 식민 권력과 귀족 세력의 관계를 중심으로」(『서울학연구』 43, 2011)
- 이왕무, 「1906년 순종의 嘉禮班次 연구」(『장서각』 25, 2011)
- 이왕무, 「대한제국기 순종의 西巡幸 연구-『西巡幸日記』를 중심으로」(『東北亞歷史論叢』 31, 2011)
- 김소영, 「순종 황제의 南·西巡幸과 忠君愛國論」(『한국사학보』 39, 2010)
- 이태진‧이상찬, 『조약으로 본 한국 병합-불법성의 증거들』(동북아역사재단, 2010)
주석
-
주1
: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1897~1970). 이름은 은(垠). 광무 4년(1900)에 영왕에 봉해지고 융희 1년(1907)에 황태자에 책립되었으나, 이토 히로부미에 의하여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 황족 이방자 여사와 정략결혼을 하였다. 1963년에 귀국하였다. 우리말샘
-
주2
: 대한 제국 말기에, 일본의 통감이 임명한 일본인 차관이 내정을 직접 집행하던 정치. 우리말샘
-
주3
: 1909년 7월 12일에 일본이 한국의 사법권 및 감옥 사무 처리권을 빼앗기 위하여 강제로 체결한 외교 문서. 이완용과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통감 사이에 맺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법부(法部)와 재판소가 폐지되고 그 사무는 통감부의 사법청(司法廳)으로 옮겨졌다. 우리말샘
-
주4
: 일본의 정치가(1841~1909). 막부 정권 타도에 앞장섰으며, 총리대신과 추밀원 의장을 지냈다. 주한 특파 대사로서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으며, 1905년에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우리나라 국권 강탈을 준비하던 중, 1909년에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되었다.
-
주5
: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사법대신, 야마가타 내각의 농상무대신, 가쓰라 내각의 재무대신을 역임하고, 추밀고문관을 거쳐 조선통감부 부통감이 되어 조선에 부임하였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의 뒤를 이어 제2대 통감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망하였다. 바로가기
-
주6
: 일본의 군인·정치가. 이완용 친일내각으로부터 경찰권을 이양받아 헌병·경찰을 동원한 삼엄한 공포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국권을 탈취했고 국권탈취 후 초대 조선총독으로 무단 식민정책을 폈다.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정책을 수행했다. 바로가기
-
주7
: ‘내각 회의’를 줄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