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규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보성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이칭
인언(仁彦)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5년
사망 연도
1967년
본관
김해(金海)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
주요 경력
안규홍 의진 부장|의병장
대표 상훈
건국포장(1977)|건국훈장 애국장(1990)
관련 사건
정미의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도규는 보성 출신으로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보성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8년 안규홍 의진에 합류하여 부장으로도 활약하였다. 보성의 박곡 전투, 병치 전투, 진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안규홍이 체포되고 의병이 해산되자 이름을 숨기고 은신하였다.

정의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보성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인적사항

김도규(金道珪, 1885~1967)는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형국(金炯國)이다. 자는 인언(仁彦)이고,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강건하였고 무예와 진(陣) 치는 법을 익혔다.

주요 활동

1907년 고종 황제 폐위와 대한제국군 해산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고, 김도규의 고향인 전라남도 보성에서도 안규홍을 중심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그는 안규홍 의진에 합류하여 보성의 박곡(亳谷) 전투에서 공을 세운 후 안규홍 의진의 부장(副將)이 되었다. 운월 전투에서 먼저 포를 쏘아 일본군 장교를 사살하였다. 1908년 10월에 순천수비대의 후방 통로상에 자리한 병치(並峙) · 진산(眞山) 전투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안규홍이 체포되고 의병이 해산되자, 김도규는 이름을 숨기고 은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追敍)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준산실기(濬山實記)』

단행본

『독립운동사자료집 3권』(국가보훈처)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일조각, 2004)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義兵戰爭硏究 (上)』(지식산업사, 1990)

논문

홍영기, 「한말 고흥지역의 의병항쟁」(『한국독립운동사연구』 60,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7)
강길원, 「澹山 安圭洪의 抗日鬪爭」(『孫寶基博士 停年紀念 韓國史學論叢』, 지식산업사, 198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