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철 ()

근대사
인물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에 참여한 천도교인.
이칭
용암(龍菴)
여중(汝仲)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8년
사망 연도
1917년
본관
부안(扶安)
출생지
전라북도 부안
주요 저서
김낙철역사(金洛喆歷史)
주요 경력
동학교단 재건 운동
관련 사건
동학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낙철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에 참여한 천도교인이다. 1858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에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3년 복합상소운동에 참여하였고 1차 동학운동 때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별개로 활동하였다. 제2차 동학운동 과정에서는 전봉준과 연합하여 활동하다가 1894년 12월에 체포되었다. 이후 최시형을 도와 동학교단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천도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정의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에 참여한 천도교인.
인적사항

김낙철(金洛喆, 1858~1917)은 1858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용암(龍菴)이며, 자는 여중(汝仲)이다. 그의 집안은 부안에서 유력한 지주 집안이었다. 어려서 유학(儒學)을 공부하였으나, 33세 되던 해인 1890년에 동생들과 함께 동학에 입도(入道)하였다.

주요 활동

1891년에는 충청도 공주에 머물고 있던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을 찾아가 직접 지도를 받았다. 1893년에는 서울에서 있었던 복합상소운동에 부안의 동학교도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1894년 4월에 전봉준이 중심이 된 제1차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김낙철도 부안에서 봉기(蜂起)하였다.

김낙철은 수백 명의 도인을 이끌고 부안 읍내로 들어가 도소(都所)를 설치하였고, 동생 김낙봉으로 하여금 줄포(茁浦)에도 도소를 설치토록 하였다. 그는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부안현 관내를 장악하고 치안을 유지하였을 뿐 타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전봉준의 농민군에 합류하지 않았다.

1894년 9월에 일어난 제2차 동학운동 과정에서는 전봉준과 함께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김낙철은 1894년 12월에 이웃마을 사람의 고발에 의해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되었다. 이때 나주 수성군과 관속들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하였다. 김낙철 형제는 이듬해 3월에 석방되었다. 이후 최시형을 도와 동학교단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5년 이후에는 천도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김낙철의 회고록으로 『김낙철역사(金洛喆歷史)』가 있으며, 동생 김낙봉의 회고록인 『김낙봉이력(金洛鳳履歷)』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오지영, 『동학사(東學史)』(영창서관, 1940)
최류현, 『시천교역사』(1920)
『천도교회사초고』(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 1920)

논문

이선아, 「19세기 부안 儒生 奇幸鉉의 『鴻齋日記』와 동학농민혁명의 실상」(『동학학보』 50, 동학학회, 2019)
정우봉,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자기 증언에 나타난 주체의 형상」(『漢文學論集』 52, 근역한문학회, 2019)
윤석산, 「해월 최시형의 호남 포덕과 부안의 동학」(한국종교 41, 2017)
조성운, 「부안지역의 동학농민운동과 백산대회」(『歷史와 實學』 61, 歷史實學會, 2016)
박맹수, 「김낙철계의 동학농민군 활동과 갑오 이후의 동향」(동학학보 17, 2009)
신용하, 「갑오농민전쟁의 주체세력과 사회신분」(『한국사연구』 50 · 51합집, 198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