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 ()

근대사
인물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의병장.
이칭
경명(景明)
낙계(樂溪)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4년
사망 연도
1947년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
주요 경력
홍주의진
대표 상훈
대통령 표창(1963)|건국포장(1980)|건국훈장 애국장(1990)
관련 사건
홍주성 전투
내용 요약

김덕진은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을 위시로 한 홍주의진에 참여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1906년 5월에 일본군의 공격에 의진이 흩어지고 다시 재궐기하는 과정에 참여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투옥하여 복역하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정의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의병장.
인적사항

김덕진(金德鎭, 1864~1947)은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적곡면(赤谷面) 낙지리(樂只里)에서 김중일(金重鎰)의 9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경명(景明), 호는 낙계(樂溪)이다.

주요 활동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적인 을사의병이 일어났다. 김덕진이 살고 있던 호서 지역에서 의병운동을 주도한 것은 홍주의진(洪州義陣)이었다. 홍주 지역의 의병들은 민종식(閔宗植)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고, 김덕진도 민종식 의진에 참여하였다.

홍주의진은 1906년 5월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후 김덕진은 곽한일, 박윤식, 김운락 등과 같이 재궐기를 준비하였다. 구체적으로는 9월 말경에 수백 명의 군사들을 예산읍 주변에 배치하고 음력 10월 5일에 예산읍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예산의 일진회원에게 탐지되어 계획의 일부가 일본 헌병대에 알려지게 되었고,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의 습격으로 재궐기는 실패하게 되었다. 김덕진은 공주경찰서에 투옥되어 복역하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주1, 1990년 건국훈장 주2주3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
『기려수필(騎驢隨筆)』

단행본

『독립운동사 1권』(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 3권』(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 4권』(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권』(국가보훈처)
주석
주1

대한민국을 세우고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데에 힘을 다하여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포장.    우리말샘

주2

건국 훈장 중 네 번째 등급.    우리말샘

주3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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