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金德鎭, 1864~1947)은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적곡면(赤谷面) 낙지리(樂只里)에서 김중일(金重鎰)의 9세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경명(景明), 호는 낙계(樂溪)이다.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적인 을사의병이 일어났다. 김덕진이 살고 있던 호서 지역에서 의병운동을 주도한 것은 홍주의진(洪州義陣)이었다. 홍주 지역의 의병들은 민종식(閔宗植)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고, 김덕진도 민종식 의진에 참여하였다.
홍주의진은 1906년 5월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후 김덕진은 곽한일, 박윤식, 김운락 등과 같이 재궐기를 준비하였다. 구체적으로는 9월 말경에 수백 명의 군사들을 예산읍 주변에 배치하고 음력 10월 5일에 예산읍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예산의 일진회원에게 탐지되어 계획의 일부가 일본 헌병대에 알려지게 되었고,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의 습격으로 재궐기는 실패하게 되었다. 김덕진은 공주경찰서에 투옥되어 복역하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追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