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숙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심남일 의진에서 도통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이칭
이명
김제헌(金濟憲)
가석(可石)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2년
사망 연도
1943년
본관
김해(金海)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군
주요 경력
심남일 의진 도총장
대표 상훈
건국포장(1986)|건국훈장 애국장(1990)
관련 사건
정미의병
내용 요약

김도숙은 대한제국기 심남일 의진에서 도통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심남일 지휘 아래 1908년 3월의 강진 오치동 전투, 1908년 10월의 능주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8월 석정 전투 패배 후 능주로 피신하였다.

정의
대한제국기 심남일 의진에서 도통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인적사항

김도숙(金道淑, 1872~1943)은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이명(異名)은 김제헌(金濟憲)이다. 유학(儒學)을 공부한 선비 출신으로 호는 가석(可石)이다.

주요 활동

1907년 12월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신광면(新光面)에서 심남일(沈南一)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켜 의병을 모집할 당시에 가담하여 도총장이 되었다. 1908년 3월에 심남일 의진의 일원으로 강진(康津) 오치동(吾治洞)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남평(南平)에서 일본군 5명을 사살하였다. 1908년 6월에는 능주와 영암, 나주, 장흥, 해남 등의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1908년 10월 능주 전투에서 일본군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9년 8월 석정(石亭) 전투에서 패한 후 심남일 의병장이 의병해산칙령(義兵解散勅令)에 따라 의병 진영을 해산하자 김도숙도 능주로 피신하였다. 같은 해 10월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에서 체포되어 7년간 수감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기록은 아니다.

상훈과 추모

1986년 주1, 1990년 건국훈장 주2주3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운동사자료집 1권』(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 2권』(국가보훈처)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일조각, 2004)

논문

姜錫重, 「韓末 沈南一義兵運動 硏究」(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 석사학위논문, 1992)
홍영기, 「舊韓末 沈南一 義兵의 組織과 그 活動」(『동아연구』 17,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1989)
주석
주1

대한민국을 세우고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데에 힘을 다하여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포장.    우리말샘

주2

건국 훈장 중 네 번째 등급.    우리말샘

주3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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