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귀비엄씨(貴妃嚴氏)이다. 영친왕(英親王) 또는 영왕(英王)이라 칭하기도 한다. 순종과는 이복형제 사이이다.
1900년 8월 영왕에 봉하여졌으며, 1907년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그 해 12월 이토[伊藤博文]통감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순종이 폐위되어 이왕(李王)이 됨에 따라, 황태자였던 영왕 역시 단순히 왕세제(王世弟)로 격하되었다.
1920년 4월 일본 황실의 이른바 내선일체 융합정책에 따라 일본왕족 나시모토[梨本宮]의 맏딸인 마사코(한국명 方子)와 정략결혼하였다. 1926년 순종이 죽자 형식상으로는 왕위계승자가 되어 이왕이라 불렸으나 귀국하지는 못하였다.
일본에 강제체류하는 동안 철저한 일본식 교육을 받았으며, 일본 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을 거쳐 육군 중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어 환국하고자 하였으나 국교단절과 국내정치의 벽에 부딪혀 귀국이 좌절되었다.
그 뒤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황족으로서의 특권을 상실하고 재일한국인으로 등록하여 1963년까지 일본에서 간고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1963년 11월 당시 박정희(朴正熙)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의 주선으로 국적을 회복하고, 이방자와 함께 귀국하였다.
그러나 귀국 당시 뇌혈전증으로 인한 실어증으로 시달리고 있었으며, 오래도록 꿈꾸어온 불우한 이웃을 돕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생전에 부인 이방자와 함께 1966년에 심신장애자재활원인 자행회(慈行會), 1967년에는 아호를 빌린 신체장애자훈련원인 명휘원(明暉園)을 설립하여 사회봉사의 뜻을 펴고자 하였다.
사회봉사의 정신은 사후 이방자에 의해, 1971년 영친왕기념사업회, 정신박약아교육시설인 자혜학교(慈惠學校), 1982년 신체장애아교육시설인 명혜학교(明惠學校) 설립 등으로 이어졌다.
이진(李晉)과 이구(李玖) 두 아들을 두었으나 맏아들 이진은 어려서 죽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내에 능이 있으며, 1989년 4월 30일 죽은 부인 이방자와 합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