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07년 대구에서 조직된 애국계몽단체.
설립배경
이에 일제의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 민족 자립경제를 수립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1907년 2월 대구 광문사(廣文社) 회장 김광제(金光濟)와 부회장 서상돈(徐相敦) 등의 명의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전개하자는 발기취지서가 발표되었다.
이 발기취지서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국채보상의 주된 실천방법을 금연에 두고 이의 대대적인 실천을 주장하였다. 취지서 발표 후인 2월 21일에 드디어 단연회(斷煙會)를 설립하고 직접 의연금을 거두러 나섬으로써, 금연을 위주로 한 국채보상운동이 실천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기능과 역할
이 후 전국 각지에서 국채보상을 위한 조직이 설립되었으며, 서울여자교육회 · 대한부인회(大韓婦人會)와 같은 여성단체는 물론, 당시의 모든 언론기관들이 이 운동에 적극 호응하여 모금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담배를 끊어 국채를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은 처음부터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이나 지도층을 형성하지 못한 채 민족의식이 강한 소수의 지식층과 민족자본가들에 의해서만 발기되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이 때문에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는데, 전국적인 조직 및 지도층 형성 문제, 지도층과 일반민중과의 연대 문제, 일제의 탄압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 문제가 그것이다.
연원 및 변천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韓國資本主義成立史論)』(조기준, 고려대학교출판부, 1973)
- 「한말국채보상운동(韓末國債報償運動)에 관(關)한 일연구(一硏究)」(이송희, 『이대사원(梨大史苑)』 15, 1978)
-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의 여성참여(女性參與)」(박용옥, 『사총(史叢)』 12·13, 1968)
-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과 프레스캠페인」(최준, 『백산학보(白山學報)』 3, 1967)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
- 『황성신문(皇城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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