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1885년에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에 임명되고 그 뒤 시강원 겸필선을 거쳐 이듬해에는 성균관대사성이 되었고, 1889년에는 이조참의가 되었다.
1891년에는 이조참판이 되고, 1898년에는 궁내부특진관, 1899년에는 봉상사제조가 되었다. 1899년 10월 일시 면직되어 고군산(古群山)으로 유배되었으나 1900년 12월 사면되었다. 1901년에 다시 궁내부특진관이 되었으며, 그 해 11월에는 평안남도 관찰사, 1902년 2월 평안북도 관찰사를 지냈다.
1903년에는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 되었고, 1905년에는 비서감승(秘書監丞)의 관직에 올랐다. 같은 해 7월에 규장각직학사, 1906년 시강원첨사, 태의원경을 지냈다. 그 해 3월 비서감경, 9월 장례원경(掌禮院卿)이 되었으며, 1907년에는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