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1882년(고종 19) 10월 남행별군직(南行別軍職)에 임명되었으며, 1884년 윤5월 전라우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개화파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홍영식(洪英植)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대신들을 축출하고 개화파정권을 수립하자 이에 참여하여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가 되었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뒤 여전히 관직에 남아 그 이듬해 4월 전라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후에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내정간섭에 대항하여 민영환(閔泳煥)·민응식(閔應植)·민종묵(閔種默) 등 민씨척족들과 함께 러시아의 힘을 빌려 청나라를 배척하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민영익(閔泳翊)의 폭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