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6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강서의 봉암보통학교에서 근무하였다. 1919년 4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그해 5월 중퇴 후,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 안창호(安昌浩)의 지시에 따라 평양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다.
그 뒤 다시 상해로 돌아가 안창호의 지시를 받고, 1920년 8월 미국의원단 내한 때 의원단에게 제출할 대한민국 인민대표의 청원서 및 대한여자계대표의 청원서 백수십통과 안창호로부터 서울의 양기탁(梁起鐸) 앞으로 보내는 서신을 휴대하고, 오희문(吳熙文)과 같이 국내에 몰래 들어와 임무를 수행하던 중, 그 해 8월 14일 일본경찰에 의해 평양에서 붙잡혔다.
평양경찰서 및 서울헌병대 등지에서 8개월여에 걸친 구금생활을 하다가 강서경찰서로 이첩, 석방되었다. 1927년 만주로 이주하여 곡물상을 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북한에서 강무학(姜無鶴)과 같이 조만식(曺晩植) 영도하에 치안대에서 공산당과 항쟁하다가, 1945년 9월 강무학과 같이 월남하였다. 1947년 서북신문사(西北新聞社)의 이사로 취임하였다.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