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제8대 국왕 예종과 안순왕후 청주한씨의 능.
건립경위
예종 창릉(昌陵)에 부역한 역군(役軍)은 7천 명에 이르렀는데, 세조(世祖, 1417~1468, 재위 1455~1468) 광릉(光陵) 조영,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 영릉(英陵) 천릉 등이 창릉 조영 이전에 연달아 있어서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470년 2월 5일에 예종을 창릉에 안장하였다. 안순왕후(安順王后, ?~1498)는 1498년 12월 23일에 승하하였으며, 1499년 2월 14일 창릉에 장사를 지냈다.
1754년에 건립된 창릉 표석 음기(陰記)에는 예종릉을 ‘경릉 북강 간좌지원(敬陵 北岡 艮坐之原)’, 안순왕후릉을 ‘대왕릉좌강간좌지원(大王陵左岡艮坐之原)’이라고 하여 예종릉이 서쪽, 왕후릉이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변천
형태와 특징
정자각은 두 능의 남쪽 중앙에 있으며 비각(碑刻)과 홍살문이 남아 있다. 『창릉지(昌陵誌)』에는 정자각 남쪽 좌우에 수복방(守僕房)과 수라간(水剌間)이 그려져 있어서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금석문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창릉지(昌陵誌)』
-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Ⅰ』(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논문
- 김이순, 「창릉의 왕과 왕후 능의 위치 재고」(『미술사학연구』 제267호, 한국미술사학회, 201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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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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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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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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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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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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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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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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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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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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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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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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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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