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신. 1911년 105인 사건으로 검거당하였다가 1912년 9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언도받았다.
1913년 10월부터 1918년 1월까지 간도(間島) 용정(龍井)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간도에서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 및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를 거점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간도에서 검거되어 그 해 8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