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춘(李椿). 초명은 이선래(李善來). 천호(千戶) 이행리(李行里)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등주 최씨(登州崔氏)로 호장(戶長) 최기열(崔基烈)의 딸이다. 비는 원나라의 천호(千戶) 벼슬을 받은 박한보(朴閑甫)의 딸 경순왕후(敬順王后: 추존)이다.
1394년(태조 3) 4대조를 추존할 때 ‘도왕(渡王)’이라 했다가 2년 뒤에 다시 도조로 격상되었다. 원나라로부터 아버지의 천호 관직을 계승하고 아울러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라는 몽고식 이름을 받았다.
처음에 박씨와 결혼해 탑사불화(塔思不花)와 이자춘(李子春)을 낳았다. 박씨가 죽자 쌍성총관(雙城摠管)의 딸 조씨(趙氏)와 재혼해 완자불화(完者不花)와 이나해(李那海)를 낳았으며, 곧 의주(宜州)에서 화주(和州)로 옮겼다.
그가 이 때 화주(지금의 함흥평야)로 옮긴 것은 농업과 목축에 편리한 점도 있었지만, 후처 조씨가 조휘(趙暉)의 손녀였으므로 처가의 정치적 세력을 이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후계자 싸움을 불러일으켰다.
1334년(충숙왕 복위 3)부터 풍질(風疾)을 앓게 되어 전처 소생인 탑사불화를 계승시키려 했으나 후처인 조씨는 그녀의 맏아들인 완자불화로 계승하기를 원하였다.
그 해 원나라에서는 중서성차관(中書省差官)으로 하여금 이행리를 따라온 오동(斡東)의 백성을 뽑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원류이민(原流移民)을 분리시켜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나라의 책동 배후에는 후처인 조씨가 개입되어 있었다.
이춘이 죽자 탑사불화가 습직했으나 2개월 뒤에 죽었고, 이로 인해 후계자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들 이교주(李咬住)가 어렸으므로 탑사불화의 이복동생 이나해(李那海: 이나해의 동복형 완자불화는 이 때 사망한 듯함)가 야심을 품고 모계인 조총관의 세력을 배경으로 관직을 세습, 이교주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 결과 전처 소생과 후처 소생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춘의 전처 박씨는 오동백호(斡東百戶) 박광(朴光)의 딸이고 탑사불화의 처인 이교주의 어머니도 박씨였으므로 결국 남방 유이민의 후예인 박씨 세력과 조씨 세력의 대결이 되었다. 이들의 대결은 상중에 원나라에서 직첩으로 내린 선명(宣命: 황제의 명령)과 인신(印信)을 이나해가 훔쳐감으로써 절정에 달하였다.
이에 이자춘은 형수 박씨에게 이교주를 데리고 개원로(開元路)에 가서 호소하게 하였다. 결국 원나라에서 조씨는 적실이 아니므로 조씨 소생은 세습할 수 없고, 이교주는 유약하므로 장성할 때까지 숙부 이자춘이 습직할 것을 명하여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이 때 원나라에서 박씨 세력을 옹호한 것은 쌍성총관인 조씨의 독점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능은 의릉(義陵)으로 함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