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후기 18대 현종과 비의 능침인 숭릉에 건립한 정자각이다. 1674년에 현종의 능을 조성하며 제사 건물인 정자각도 같이 건립했다.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일한 팔작지붕으로, 규모는 정전 5칸, 배위청 3칸의 전체 8칸이다. 8칸 정자각은 숭릉 외에도 현존하는 것으로 익릉, 휘릉, 의릉의 정자각이 있다. 그러나 이들 정자각은 지붕이 모두 맞배지붕이며 숭릉 정자각만이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숭릉 정자각은 창건 시의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17세기 정자각의 다양한 건물 유형을 확인할 수 있다.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후기 18대 현종과 비의 능침인 숭릉에 건립한 정자각(丁字閣). 능건축.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숭릉산릉도감의궤』계사, 9월 16일조에는 “총호사가 아뢰기를, ‘각능 정자각은 모두 정각(正閣) 3칸, 전면(前面) 2칸으로 조성되어 합쳐서 5칸인데 유독 광릉 정자각은 정각 3칸의 밖에 또 좌우 익각이 있고 전면에도 1칸을 추가하여 합쳐서 8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년에 영릉(寧陵) 정자각에 대해 전교하시기를 광릉의 제도를 모방하여 8칸으로 조성하라고 하시었습니다. 이제 이 정자각은 각릉의 제도를 따를 것인지 영릉의 제도를 따를지 여부를 감히 품하여 아룁니다’하니 왕이 답하여 ‘한결같이 영릉의 제도를 따르도록 하라’”고 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그러므로 지금의 숭릉 정자각의 모습은 바로 광릉의 제도를 따른 영릉을 본받은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지붕이 팔작지붕인 것도 영릉의 형태를 따른 것으로 보여지나 영릉 정자각이 고종 연간에 일반적인 모습의 5칸 정자각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지금으로써는 그 유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숭릉산릉도감의궤』에 기록된 소요자재를 보면 ‘선자연(扇椽) 156개’, ‘사래(舍羅)’ 등 팔작지붕과 관련된 부재들이 언급되어 있어 숭릉 정자각은 창건 시부터 팔작지붕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공포는 정전은 일출목 이익공, 배위청은 이익공의 구조이다. 정자각은 규모가 8칸으로 확대되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외관을 하고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숭릉산릉도감의궤(崇陵山陵都監儀軌)』
- 「산릉도감을 통해본 17세기 정자각의 복원적 고찰」(구선이, 김동욱, 한국건축역사학회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1)
- 「조선후기 영악전 기능수용에 따른 정자각 평면 변화 고찰 」(신지혜, 건축역사연구, 2009)
- 「조선시대 산릉 정자각의 연원 소고」(김동욱, 한국건축역사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08)
- 「조선왕릉 8간 정자각 고찰」(김왕직, 한국건축역사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08)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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