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개성부유후, 의정부참찬, 의정부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7년 좌간의대부, 이듬해 정안군(靖安君: 태종)의 막료로서 판교서감사(判校書監事) 겸 상서원소윤(尙瑞院少尹)에 이어 승지 겸 상서원윤을 지냈다. 정종 때 도승지·대사헌, 태종 때 예문관학사를 거쳐 중군총제(中軍摠制)·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공조판서·호조 판서·판한성부사·계림부윤·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하였다.
1417년(태종 17) 의정부참찬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건너가 홍무연간(洪武年間: 明太祖時代)에 만든 각궁(角弓)을 구입하여 왔고, 그 뒤 의정부찬성이 되었으나 풍질로 사직하였다.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 이름이 높았고, 성품은 청렴하였으며 예의가 발랐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건원릉신도비(健元陵神道碑)의 제액(題額)을 썼다.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용재총화(慵齋叢話)』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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