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초인간적 또는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로 여겨지는 신이다. 귀신이라는 개념은 매우 복합성을 지니고 있어서 다양한 대상을 지칭하여 사용된다. 크게 범신론적인 귀신, 죽은 자의 넋을 지칭하는 사령 두 가지로 나뉜다. 범신론적 귀신은 다시 성스럽고 신이한 초자연적 존재와 공포스럽고 괴이한 탈자연적 존재로 나눌 수 있다. 성스러운 존재는 공동체가 섬기는 신에 가까운 신앙과 외경의 대상이며, 괴이한 존재는 주술에 의해 쫓아내야 할 음험하고 해로운 대상이다. 사령은 조상신과 같은 존재로서 음덕을 기대하며 섬겨야 할 대상이다.
제주도의 「 천지왕본풀이」에서 “금세상에 어느 성인이 먼저 나시고 어느 귀신이 먼저 나셨습니까.”라고 노래할 때의 귀신은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뜻으로 쓰일 때는 죽은 이의 넋, 곧 사령(死靈) 또는 사령귀를 지칭하기도 하는 말이다. 귀신은 우리나라 사람의 신앙행위와 신비체험의 대상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앙이나 민속현장에서 그 개념이 매우 다양하다. 흔히 일상어에서 ‘귀신 곡할 노릇’이라거나 ‘귀신도 모를 일’이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귀신의 개념 그 자체가 많은 변화를 지닌 복합적인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무가(巫歌)에서 ‘일만팔천신’ 또는 ‘팔만신’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은 단순히 신들의 수가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귀신의 개념 속에는 무속신앙 · 유교 · 도교 그리고 불교 등에 연원을 둔 개념들이 얽혀 있는 만큼, 단정적인 정의로는 그 정체가 잡히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신 · 귀 · 잡귀 · 객귀(客鬼) · 여귀(厲鬼), 그리고 신명 · 신령 · 신인 등의 개념이 귀신과 포개져 있다. 더불어 자연신적인 것, 의인신적(擬人神的)인 것, 심지어 주물신앙(呪物信仰)의 대상이 됨직한 물령적(物靈的)인 것까지 겹쳐져 있어서 귀신이라는 개념이 지닌 복합성은 더욱 더 짙다.
귀신이 범신론적(汎神論的)인 명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념의 복합성에 있는 것이다. 서구 인류학이나 종교학의 개념을 빌린다면 제신들(gods), 물령이라고 번역할 만한 스피릿(spirit), 마귀를 뜻하는 데몬(demon), 사령을 뜻하는 고스트(ghost) 등이 있다. 따라서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알맞은 귀신이라는 개념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모든 것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지고(至高)의 절대신 개념이 귀신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민속신앙 및 무속신앙의 현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제의 귀신론에서 사령신이 가지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귀신을 범신론적인 것과 사령신적인 것의 두 범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앞세울 때, 범신론적 귀신은 다시 크게 보아 성스러운 신이(神異)의 초월적(초자연적) 존재와 공포스러운 괴이(怪異)의 탈자연적 존재라는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지 기본적 기준과 그에 관련된 세부적 기준들은 사령신의 귀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귀신이라는 개념은 먼저 중국의 역대 사서(史書)들이 우리나라의 상고대사회의 종교현상을 기술하는 가운데에서 사용하였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후한서(後漢書)』 고구려전에, “즐겨 귀신 · 사직(社稷) · 영성(靈星)을 받들고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 드리면서 크게 무리 짓는다. 이를 일러 동맹이라 한다. 그 나라의 동쪽에 큰 굴혈이 있고 이를 맡은 신을 수신(隧神)이라고 하거니와 이도 역시 시월에 맞이해서 제사를 드린다.”라고 되어 있다. 마한에 대해서도, “항상 오월에는 밭일하고 귀신에게 제사 드리면서 밤을 새워 술마시고 가무를 행한다. ……중략…… 또한 소도(蘇塗)를 세운다. 즉 큰 나무를 세워서 이에 방울을 걸고 그럼으로써 귀신을 섬긴다.”라고 되어 있다.
그밖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살고 있는 곳 좌우에 큰 집을 짓고 귀신에게 제사 드린다. 또, 영성이며 사직을 받든다.(『양서』 동이전 고구려)”, “언제나 오월에 귀신에게 제사 드린다. 노래하며 춤추고 술마시면서 밤낮 없이 어울리되 그 춤에는 수십명이 참여하기도 한다.(『삼국지』 위서 삼한)”, “그 풍속이 귀신을 중히 여겨서 매양 오월에 씨뿌림과 밭갈이가 끝나면 무리져 노래하고 춤춘다. 그럼으로써 신에게 제사 드리는 것이다. 시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역시 이와 같이 한다.(『진서』 동이전 마한)”
이들 여러 인용문에서는 다만 고구려나 삼한에서 귀신을 섬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귀신의 정체에 관한 내용은 없다. 물론, 고구려나 삼한의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의 대상을 원래 귀신이라고 불렀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것은 중국인들의 귀신이라는 관념에 가장 가까운 신앙의 대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을 복원하거나 확인하기는 불가능하고, 다만 귀신이라는 한자어에 담긴 신앙의 대상의 속성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위의 여러 기록에서 귀신의 속성을 비교적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근거를 지닌 부분을 따로 추출하면, ① 항상 오월에는 밭일하고 귀신에게 제사 드리면서 밤을 새워 술마시고 가무를 행한다. ② 또한 소도를 세운다. 큰 나무를 세워서 이에 방울을 걸고 그럼으로써 귀신을 섬긴다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①은 삼한 또는 마한의 것으로, 이 경우 귀신은 농사 굿과 분명하게 맺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오월에 씨뿌리고 난 뒤와 시월에 농사 끝나고 난 뒤 귀신에게 제사 드리는데 춤과 노래를 더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후세의 별신굿이 능히 연상될 수 있다. 마한의 별신굿격인 농사굿에서 섬김을 받은 귀신이라면 그 성격상 풍요의 신이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 농사굿이 겉보기로나마 별신굿과 비슷하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 풍요의 신의 속성을 후세의 서낭신(당산신 · 당신 · 동신)에 비추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서낭신이 마을 등속의 지역 공동체의 수호신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②의 기록에서 소도를 후대에까지 전해진 솟대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더하여 다시 방울이 걸린 장대마저도 솟대 또는 서낭대라고 생각한다면, 여기서도 귀신이라는 개념이 서낭신에 매우 근접하여 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꿩의 털과 방울이 달린 장대는 가장 흔하게 보는 서낭대의 한 종류이다. 삼한(마한)의 경우 이같이 두 겹으로 후대의 서낭신에 매우 근접한 귀신 개념을 유추하여 볼 수 있으나, 같은 기록 속의 서로 앞뒤가 다른 문맥 속에 끼어 있는 두 귀신이 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힘들다. 이 때도 후대의 별신굿에서 유추한다면, 소도의 귀신이 곧 농사굿의 귀신과 같다고 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별신굿은 서낭대를 신체로 섬기며 굿을 치르기 때문이다.
한편, “하늘에 제사를 드리며 주야로 음주 가무한다.”고 한 예(濊)의 무천(舞天)이나, 이와 비슷한 부여의 영고(迎鼓)가 다같이 가무음주로 진행되는 공동체의 집단적인 굿인 만큼, 그 기본적인 성격이 이미 앞에서 언급한 마한이나 고구려의 굿들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영고나 무천이 천신에게 바쳐진 굿이듯이, 고구려나 마한의 굿 역시 천신에게 바쳐진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고구려나 마한의 귀신은 풍요의 천신으로 지역공동체의 수호신으로 섬겨졌으리라 추정되고, 나아가 그것은 후대의 서낭신에 매우 근접하고 있거나, 서낭신의 원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은 『삼국지』 위서 고구려전이 “귀신을 믿는다. 국읍(國邑)마다 한 사람을 내세워 천신 제사를 도맡게 한다. 이를 천군이라고 이름 짓는다.”라고 기술하면서, ‘귀신을 믿는다.’와 ‘천신 제사’를 앞뒤로 직접 이어놓고 그로써 앞의 귀신이 곧 뒤의 천신과 동일한 느낌을 주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성격을 지닌 신앙의 대상을 우리는 본래부터 고유한 명명법(命名法)으로 무엇이라고 불렀겠는가 하는 문제를 젖혀둔다면, 마한(또는 삼한)과 고구려시대에 중국인에 의하여 귀신이라고 명명된 신앙의 대상을 크게 보아 인격화된 자연신이거나 신격화된 자연이라고 추정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한 지역공동체가 굿을 통해 섬기는 풍요의 신이고 우주론적인 함축성을 간직하고 있었던 존재이다. 이러한 경우, 귀신의 개념은 유일신교적인 절대신(God)의 경지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도, 초자연적 존재로 인격화되거나 의인화된 다신교적인 제신(gods)의 개념에 매우 근접하게 된다.
『삼국유사』는 신라 제25대 진지왕 때의 비형랑(鼻荊郎) 이야기를 전하면서, 적어도 앞에 보인 중국의 기록들이 고구려며 삼한(마한)의 것으로 하여 제시한 귀신이라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귀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비형은 죽은 진지왕이 생시와 같은 모습을 하고서 살아 있는 도화와 인연을 맺은 끝에 태어난 인물이다. 말하자면 사령(死靈)과 산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다. 진평왕이 그를 거두어서 궁중에서 길렀는데, 열다섯 살쯤 되자 매일 밤 멀리 도망을 가곤 하였다. 왕이 힘센 용사 50인으로 하여금 그를 지키게 하였으나 매번 허사였다. 번번이 월성을 날아서 넘어서는 서쪽으로 가 황천 둑 위에서 귀(鬼)의 무리들을 데리고 놀았다.
용사들이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엿보았더니, 그 귀의 무리들은 여러 절의 새벽 종소리를 듣고는 제각각 흩어져갔으며, 그제서야 비형랑도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왕이 비형랑에게 다리를 놓게 하였더니 그는 단 하룻밤 사이에 큰 돌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 이름을 귀교(鬼橋)라고 한 것은 바로 이 까닭이다.
또, 귀의 무리 가운데서 길달이라는 자가 뽑혀서 왕정을 보필하였는데, 뒤에 여우로 변하여 도망가자 비형랑이 다른 귀를 시켜 이를 잡아 죽이니, 귀의 무리들이 비형랑의 이름만 듣고도 놀라서 달아나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사람들이 ‘거룩하신 제왕께서/낳으신 아들/비형랑이 여기 머물렀도다/날고 뛰는 뭇 귀의 무리들은/이곳에 머물지를 말지어다.’라는 노래를 지어 붙임으로써 귀를 쫓았다.”
이 이야기에서 보이는 귀는 첫째, 밤에만 나타나서 행동한다. 즉, 야행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사람 모습을 하고 사람과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다. 셋째, 여우와 같은 모습으로 둔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넷째, 특출한 초인적 능력을 향유하고 있다는 등과 같은 네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후세의 도깨비와 매우 근접하게 된다. 여기서 중국의 역대 문헌에 전하여진 고구려나 마한(삼한)의 귀신과 『삼국유사』「도화녀 비형랑」의 귀 사이에 비교적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게 된다.
귀는 ① 초인적이거나 초자연적이되, 신성하다는 느낌이 없다. 그러한 뜻에서 그들의 이적(異蹟)도 신이롭기보다는 괴이롭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초자연적이기보다 탈자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더 적절할 것이다. ② 귀는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굿이나 믿음이 바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주술에 의하여 사람들에게서 쫓겨나는 존재이다. 이것은 그들이 사람들에 의하여 부려지기 나름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이롭기보다 해롭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귀를 쫓는다는 뜻인 벽귀(辟鬼)는 사악함을 쫓는다는 뜻인 벽사와 맞바뀔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면, 귀는 마귀론의 범주에서 다루어질 탈자연적 괴이의 존재가 될 것이다.
같은 범주에 든 귀를 역시 『삼국유사』의 「밀본최사(密本摧邪)」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귀의 전형이 곧 길달이기는 하지만, 비형랑이 비록 성제(聖帝)의 아들이라 호칭되기는 하였어도 반귀반인(半鬼半人)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죽은 그의 부왕은 사령 내지 사령신이라는 뜻의 귀신이다. 그 귀신과 산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비형랑이므로 반은 귀신이고 반은 사람이다. 즉, 그는 귀인(鬼人)이다. 이 부분에서 죽은 사람을 귀신으로 생각한 가장 초기의 구체적인 방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역대 사서들이 제시한 고구려와 마한(삼한)의 귀신 ①과 『삼국유사』「도화녀 비형랑」의 귀 ②를 비교해보면 그 대극성이 분명해지는데, ①은 신이의 초자연성, 신앙과 외경의 대상, 이로움, 우주론적 존재들이고, ②는 괴이의 탈자연성, 쫓김을 당하는 대상, 해로움, 어둠 속의 존재 등으로 구별된다. 우리나라 민속현장의 관습을 좇아 ②의 귀도 귀신이라 부른다면, 위에서 설명한 대극성은 결국 귀신이라는 개념 내부에 존재하는 두개의 범주 사이의 대극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①을 신이의 귀신이라 부르고 ②를 괴이의 귀신이라 불러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달리 전자를 신론적(神論的)인 귀신, 후자를 마귀론적인 귀신이라고 구별해볼 수도 있다. 이 경우 역대의 우리나라 문헌에는 괴이의 범주에 들 것에 요(妖) · 사(邪) 혹은 음(淫) 등의 관형어를 붙여왔다. 이같은 신이와 괴이의 대립은 후대의 귀신론에도 대체로 적용될 수 있지만, 이 두 가지 범주에 다시 사령, 곧 고스트의 범주에 들 귀신까지 고려한다면, 이 셋으로 우리나라 귀신론의 큰 테두리가 대체로 정해질 것이다.
앞의 양자는 비록 의인화되거나 인격화되기는 하였지만 본래는 인간이 아니라는 뜻으로 비인간적 귀신인 데 비하여, 세 번째의 것은 인간이던 존재라서 인간적 귀신이라는 대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인간적 · 인간적이라는 대비성을 별도로 고려한다면, 사령의 귀신은 신론과 마귀론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사령의 귀신의 여러 아종이 신론적인 것과 마귀론적인 것으로 나누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동시에 한 특정한 사령의 귀신이 신론과 마귀론 양쪽에 걸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음사(淫祀) 또한 괴상함이 심한 것이로다. 공자가 가로되, 귀가 아닌데도 제사 드린다면 그것은 첨(諂)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함에도 삼대(三代) 이후에 정도가 행하여지지 않고 천하의 뭇 사람들이 서로 무서워하면서 신으로 말미암아 서로 미혹되었거니와 그 때문에 요가(妖家)를 무사(巫祠)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백성들이 음사에 정신이 빠져서 부모의 신(神)을 풀섶에 버리고 이름없는 귀에 아첨하고 또 이바지하는도다(『고려사』 열전 李詹條).”
이 글에서 이첨은 분명한 논리로 가묘(家廟)에 모셔야 할 부모의 ‘신’과 무당이 음사에다 섬기고 떠받들고 있는 ‘귀’를 구분하고 있거니와, 이 이첨의 신귀이원론(神鬼二元論)에서 삼국시대 귀신론의 상극적인 이원론의 잔재를 발견하게 된다. 이같은 신귀이원론이 물론 『예기』에서 볼 수 있는 “중생은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나니 이를 일러서 귀라고 한다. 살과 뼈는 아래에서 썩어 삭고 음으로 흙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 기(氣)는 위로 높이 올라가서 백물의 정(精)이 되나니 이것이 신(神)의 두드러짐이다.”와 같은 공자의 말에서 상당한 영향을 입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신이/괴이’, ‘떠받듦/물리침’ ‘이로움/해로움’, ‘우주론적/지상론적’과 같이 표시될 수 있는 귀신론 내부의 이원론적 대립은 조선조의 귀신론에까지 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들 네 가지 이원론적 대립의 기준 이외에 ‘인격성/비인격성’ 및 ‘의인화/비의인화’의 기준을 다시 더 첨가한다면, 그것으로 귀신론 내부의 이원론적 대립을 비교적 고르게 포착할 수 있는 여섯 가지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이의 넋, 곧 사령을 뜻하는 말로 귀신을 제한해서 쓴다고 하여도, 그 제한이 곧 귀신이라는 개념을 쉽거나, 단일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사령신이라는 뜻의 귀신도 개념상 상당히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다같이 사령의 귀신이라고 하지만, 조상귀신과 객귀(客鬼) 사이에는 대단한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여야 하는 것만 보아도 개념의 복합성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여기서, 사령의 귀신이 지닌 숨은 뜻을 잘 묶어내기 위하여 몇 가지 기준을 설정해볼 필요가 있다. 즉, ① 충족한 삶과 충족한 죽음, ② 소속감 내지 유대감의 분명함, ③ 신원증명이다.
첫째 기준은 한 사람이 갖출 것을 고루 갖추고서 살 만큼 살다가 집에서 편안히 천수를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요절 · 객사 · 횡사 등은 이 기준에서 빠진다. 둘째 기준은 죽은 이의 넋이 살아 있는 자들과 생전 못지않은 유대를 지키고, 살아 있는 자들의 특정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른바 무주고혼(無主孤魂)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셋째 기준은 죽은 이가 누구라는 것, 말하자면 이름 · 신분 등이 살아 있는 자들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명의 죽음은 이 범주에서 빠지게 된다.
이 세 조건을 고루 갖춘 죽음에 대해서는 관례적으로 호상(好喪)이라는 말을 써왔거니와 대부분의 조상령, 곧 조상귀신은 세 조건을 고루 갖춘 귀신의 전형이다. 이들은 거룩한 귀신으로서 떠받듦을 받고 후손들은 그에게서 이른바 음덕을 기대하게 된다. 유교의 조상숭배는 대체로 이러한 뜻의 조상귀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어느 것 하나만 결격이 되어도 귀신은 이른바 원령(怨靈) 내지 원귀(寃鬼)가 된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것을 경이원지(敬而遠之)하려 든다.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언제 해독을 끼치게 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귀신들은 마귀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원귀는 죽은 이의 넋으로,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헤매고 있는 떠돌이 넋이다. 그것은 죽은 이의 넋이면서도 저승이라는 죽음의 세계에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도 삶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의 넋이다.
① · ② · ③의 세 조건 가운데 어느 것에 결격이 생겼는가에 따라 원귀의 종류가 달라진다. ①에만 결격이 있을 때, 가족원귀라고 할 만한 원귀가 생긴다. 집안의 조상단지나 조상당새기에 모셔진 귀신이 이 무리에 든다. ① · ② · ③ 세 조건이 다 결격이 될 때, 이른바 여귀나 잡귀 그리고 객귀 따위가 생긴다. 때로 객사한 귀신을 객귀라고 하지만, 대체로는 잡귀와 객귀의 구별이 선명하거나 철저하지 못하다. 다른 원귀에 비하여 ③의 결격이 매우 두드러지게 원귀의 속성을 제약하게 된다. 이들은 무당의 수호신이 되는 권능도 원칙적으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재해나 질병의 원인으로서 상대적으로 덜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 기세가 약화되어 있고, 따라서 다른 원귀에 비하여 덜 공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여귀에게 바치는 굿은 정기적이고 국가적이라는 데서 그 특색을 갖추고 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이 변화가 많아서 하나같을 수는 없으니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좋은 죽음(良死)을 얻지 못한 이들의 종류 또한 한결같지는 않다. 혹 싸움터의 진중에서 죽고, 혹 주먹다짐하다가 맞아서 죽고, 혹은 수적(水賊)이나 화적의 무리에 당해서 죽고, 혹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어 죽는다.
혹은 담장이나 집이 허물어져 거기 깔려서 죽고, 혹은 벌레나 짐승에 물려서 죽고, 혹은 죄 없이 형벌을 받아서 죽고, 혹은 재물 탓으로 죽고, 혹은 처첩간의 갈등 때문에 죽고, 혹은 위급해서 스스로 목졸라 죽고, 혹은 돌봐줄 사람 없어 죽고, 혹은 애기를 낳던 중 난산으로 죽고, 혹은 지진으로 죽고, 혹은 떨어져 죽고 하니 이와 같은 따위의 죽음을 어찌 일일이 헤아리겠는가.
이들이 고혼(孤魂)이 되어 의지가지를 잃게 되면 제사가 미치지 못하니, 그 음혼(陰魂)이 흩어지지 않고 맺혀져서 요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낭에 고하고 여러 신령을 불러들여서 청작(淸酌)을 베푸는 것이니, 생각하건대 그럼으로써 저들 여러 무리의 귀신들이 곁들여 음식을 들게 됨으로써 여재(厲災)가 없게 되고 나아가 화기(和氣)가 있게 하는 것이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서 뽑은 이 인용문은 여귀의 속성과 종류를 망라하여 지적하고 있다. 젊어서 죽은 아내들의 귀신인 미명귀(未命鬼), 자손이 없는 무주귀(無主鬼), 이밖에도 수귀(水鬼) · 화귀 · 아귀(餓鬼) 따위가 여기에 포함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은 모두 비명횡사한 기탁할 데 없는 고혼들이다. 횡사한 무사귀신(無祀鬼神), 곧 제사를 못 받고 있는 귀신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이들은 소속감도 없고 신원증명도 불가능하다. 따로따로 제사를 받지 못하고 무리져서 제사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른바 ‘손말명’이라고 불리는 처녀귀신, ‘ 몽달귀신’이라 불리기도 하는 총각귀신, 그리고 유아로 죽은 ‘공진이’ 또는 ‘태자귀’라는 이름의 아기귀신 등 3대미성년귀신도 ① · ② · ③ 세 가지에 걸친 결격을 지니고 있어 이론적으로는 잡귀붙이에 들 수가 있다.
그들의 이름이며 부모들이 알려질 수 있다손치더라도 그들은 ‘무사귀신’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② · ③에 결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미성년귀신은 ‘사람이 못 된 채 당한 죽음과 부모에게서마저 장례식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죽음’의 주인공들이라서 그 악사(惡死)의 정도가 각별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못 되고 죽었다는 결격이 이들을 특징지우는 것이다. 이른바 ‘검은 빛의 샤머니즘’에서 악귀로서의 위력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효험이 큰 귀신으로서 샤먼의 보호령이 되는 일반적인 보기에 따라, 미성년귀신들은 잡귀와는 별도로 대접받는 귀신의 무리를 이루고 있다.
① · ②의 결격이 있으나 ③이 결격이 아닐 때 원귀들은 무당의 수호령이 된다. 이들은 신원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매우 현달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무명의 잡귀들이 될 수는 없다. 신원(伸寃)이 높으면 높을수록, 보호령으로서의 위력이 높아지는 것은 그 신원의 높이에 비례하여 원한의 깊이가 더해지고, 이 원한의 깊이가 그들의 무서움의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공민왕 · 사도세자 · 최영 · 임경업 등이 무신(巫神) 또는 마을 서낭신으로 모셔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① · ② · ③ 셋에 걸친 결격을 지닌 잡귀 무리와는 달리 이들을 대할 때, 사람들은 공포감만이 아니고 더불어 외경감을 가지고 섬기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잡귀와는 달리 물리침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연산군 · 광해군 · 사도세자 등은 따로 ‘ 별상’이라고 불리면서 독자적인 부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왕권의 좌절과 비극적인 죽음을 겪은 원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종교신앙행위에서 귀신은 섬김을 받거나 물리침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이 그들을 대하는 행위에 따라 섬김의 귀신과 물리침의 귀신으로 나눌 수 있다. 섬김은 집단적으로는 서낭굿 · 별신굿 등을 통하여 실천되고, 개인적으로는 무당의 힘을 빌린 굿과 그렇지 않은 고사나 축원 등을 통하여 실천된다. 섬기는 것은 기쁘게 해주는 일과 비는 일을 주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비는 일에는 소원의 성취를 바라는 것 이외에 사죄나 사과의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들의 잘못을 사죄 또는 사과하면서 귀신의 노여움을 푸는 것이라서 비는 일에는 푸는 일이 수반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빎으로써 사죄하여서 풀고 소원성취를 발원하게 되는 것이다. ‘ 치성드린다’가 ‘빈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리침을 또한 ‘퇴한다’거나 ‘퇴송한다’라고도 한다. 원기(怨氣)나 독기를 누그러뜨려서 화기(和氣)가 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도 한 이 물리침도 물론 굿의 수단에 호소한다. 여제(厲祭)나 별신굿 · 서낭굿이 이 목적을 위하여 쓰인다. 그러나 섬김과는 달리 물리침은 아무래도 주술에 호소하면서 달래거나 겁주어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때로는 ‘잡는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에도 영서지방의 일부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독경무(讀經巫)’들은 병이나 재난의 원인이 된 귀신을 잡는 것을 그 주기능으로 삼고 있다. 물론 잡아서 물리치는 것이다. 귀신을 잡는 일련의 유사연극적인 행위를 경읽기와 함께 실행한 끝에 잡힌 귀신을 호리병이나 나무통 속에 가두고 그것을 땅속 깊이 묻는 것으로 ‘귀신잡는 일’은 끝난다.
달램과 겁줌은 물리침을 위한 강유(剛柔) 두 가지의 방법이다. 병귀신을 ‘마마’라거나 ‘손님’으로 부르는 것은 달램의 방법이지만, 그밖에 이른바 ‘풀어먹이기’ 방법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불 · 황 · 칼 따위 무술적인 수단에 의지하거나, 또는 피 · 붉은콩 · 주황토 · 복숭아나무가지 · 맑은물 · 소금 · 경 · 부적 등 주물(呪物)의 힘에 의지하여 내쫓는가 하면, 훨씬 상위의 권능이 강한 귀신들의 힘을 빌려 위협함으로써 내쫓기도 한다.
제주도 무속신화의 하나인 「천지왕본풀이」는 귀신을 몸무게가 100근 나가는 사람과는 달리, 1근 모자라는 99근의 무게를 가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귀신이 사람과 비슷하면서도 사람과는 다른 이질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실제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본향당의 귀신그림은 귀신을 유사인체형으로 그리면서도 머리와 목 부분에는 현저한 이형성을 강조하여 묘사하고 있다.
도깨비나 일부의 귀신이 다리가 하나라는 것도 역시 귀신이 지닌 유사인체적인 이형성(이질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형태상의 이형성은 귀신이 지닌 신이성 · 괴이성의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표현이지만, 그것은 결국 귀신이 지닌 초자연성 또는 초인간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연과 초자연, 인간과 초인간, 일상과 변괴, 가시(可視)와 불가시, 합리와 초합리, 양과 음 등의 이원론적인 분류법으로 주변세계며 생활, 그밖의 인간만사를 정리하고 설명하려고 들었을 때, 이같은 이원론적 대립의 짝들 가운데 초자연 · 초인간 · 변괴 · 불가시 · 초합리 · 음 등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주체로서 귀신이 존재하게 된다.
귀신은 근본적으로 이같은 이원론으로 세계와 인간사를 분류, 정리하고 설명하려고 들 때 기능을 발휘한 한국인의 의식의 심층에 간직된 신화적 원형이다. 귀신은 그 신이의 힘이나 괴이의 힘으로 자연의 순리와 변고, 인간사의 길흉을 거느리고 제어하고 조절한다고 믿어졌다. 한국인의 종교행위는 그 신이의 힘이나 괴이의 힘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어 영향을 끼치는 데에 집중되었지만, 그 신이나 괴이는 크게는 우주론적인 것, 작게는 인간적인 것, 사물적인 것에까지 관련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유교학자들은 음양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 우주론적인 것과 조상신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음(淫)이나 요(妖), 혹은 사(邪)나 괴(怪) 따위의 범주로 몰아 배척하면서 귀신론을 정사이원론(正邪二元論)으로 나누었으나, 무속신앙과 일반 민속신앙은 그 특유한 만신신앙, 곧 범신론적인 신앙체계 속에서 정사의 대립을 포섭한 귀신론을 지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