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共同體)는 공통의 가치와 정체성을 가지고 특정 사회문화적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통적으로 공동체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친밀성이나 세계관, 규범 등을 공유했다. 일반적으로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이행하면서 공동체는 약화되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도 공동체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공동체는 공간이나 혈연 등이 아닌 공통의 관심, 상호 작용, 연대 등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공동체는 약화되었지만,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다양한 실천들이 나타나고 있다.
공동체의 기원은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 씨족, 친족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예컨대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에스(Ferdinand Tönnies)는 공동체(게마인샤프트, Gemeinschaft)와 사회/결사체(게젤샤프트, Gesellschaft)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그 전환에 관해 연구했다. 한편 공동체란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보이는데, 첫 기록은 1905년 『 황성신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동체는 1차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 형태로서 전통사회에서 지배적이었다. 반면 사회/결사체는 2차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인 조직 형태이다. 베버(Max Weber) 역시 두 개념을 활용해 근대사회로의 전환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근대사회로의 이행에서 공동체적 관계는 약화되고, 이익에 기반한 결사체나 사적 조직이 중요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도 공동체는 여전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오히려 산업사회의 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개인화, 소외, 고독, 불안 등의 문제들은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더 증가시킨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공동체 논의의 단초를 제공했던 오웬(Rober Owen), 생 시몽(Saint Simons), 푸리에(Charles Fourier) 등의 이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다양한 공동체 운동과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변이의 폭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거시적인 사회 변화와 깊이 관련된다. 그 변화들은 대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속에서 진행되는 국가의 쇠퇴와 국가 역할의 약화이다. 시장의 폭력에 대해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 주지 못하면서, 개인들이 자발적 연대를 통해 생활세계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오늘날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개인화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아노미와 고독한 개인의 문제이다.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 공동체가 여전히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외로운 개인들이 종교 공동체로부터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생태 위기와 인간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산업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풀뿌리적 저항과 대안 모색은 새로운 생태공동체 운동의 활성화를 낳고 있다. 물론 이런 공동체 운동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주류는 아니다.
전통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조직은 공동체였다. 특히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는 개인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결혼, 사망, 그리고 사후 제의에 이르기까지 생애과정 전체를 지배하는 조직이었다. 공동체는 전통사회의 경제활동을 위해서도 중요했다. 전통사회에서는 농업 생산활동을 위한 협동이 필수적이었다. 지역과 혈연을 기반으로 사회성원들 간의 화합을 증진하기 위한 공동체적 규범이 발달했다. 초기 공동체는 규모가 작고 지리적 경계가 비교적 뚜렷했다. 전통적인 공동체의 특성으로는 폐쇄성, 안정성, 대면적 관계, 전통 및 도덕적 규범 체계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공동체로는 혈연과 유교적 가치에 바탕을 둔 문중,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촌락, 협동적 노동 양식인 두레, 상부상조의 규범인 계(契)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 및 공동체적 제도들은 서로 중첩되어 전통사회의 질서를 유지했다. 농촌사회에서 혈연 및 지연 공동체는 개인의 삶을 둘러싼 중요한 환경이었다.
문중은 한국의 독특한 공동체로 17세기 중반 이후에 공고화된 것으로 보인다. 문중은 공동의 선조를 중심으로 본관과 성을 공유하는 남계 혈통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제사, 유교적 위계질서, 상부상조, 교육 등을 담당하는 확대된 가족공동체이다. 대개 문중은 동성촌(同姓村)을 이루었다.
자연부락 혹은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촌락은 한국의 대표적인 농촌 정주 형태이다. 대개 논을 중심으로 농가들이 모여 있는 집촌(集村)의 형태를 띤다. 촌락공동체는 가족에 원형을 둔 지역 집단이며, 생산을 위한 공동 조직이고, 포괄적인 상호부조적인 집단이었다. 촌락공동체는 지리적 경계가 분명했으며, 강한 집단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신분적 위계질서나 관습적 질서를 강요하는 엄격한 유교적 규범이 존재했다. 촌락공동체는 협동을 강조하는 다양한 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두레는 노동을 같이 하는 작업 공동체로, 조선 후기 이앙법(移秧法)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발달했다. 이러한 노동 방식은 모내기 등 노동력 수요가 정점에 달할 때, 농민들이 함께 일하는 합리적인 노동 활용법으로 공동체적 농민 문화의 물적 토대가 되었다. 두레는 농사일은 물론 마을의 공통 사안에 대해 협력하는 포괄적 공동체로 발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농악, 농요, 지신밟기 등의 놀이 문화와 결합되어 주민들 간의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했다. 두레는 노동 능력 제고, 구성원 간의 상부상조, 협동 훈련, 노동의 오락화, 공동체 규범 강화, 촌락의 통합 강화, 지역 농민 문화의 창조와 계승 등의 복합적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농촌 공동체 유지의 핵심적 제도였던 두레는 일제강점기의 지주-소작제 강화와 수탈 구조 속에서 사라졌다.
계는 동(洞)이나 리(里) 중심의 생활 공동체로 볼 수 있다. 촌계(村契)는 상민 마을 구성원들의 자생적인 필요에 의해 등장했다. 수해나 가뭄 등의 천재지변으로 마을에 피해가 있을 때면 계의 규약에 의거하여 공동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공동체적 연대와 공동체 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농촌공동체의 근간이었던 농민들이 식민지 수탈 체제하에서 철저하게 핍박당했다. 소작농의 증가, 농민의 궁핍화, 일본식 제도 및 문화의 이식, 농민들의 이동 때문에 전통적인 농촌공동체 제도들이 급격히 쇠퇴했다.
광복 이후 농촌의 공동체는 한국전쟁, 산업화, 도시화 등을 경험하면서 약화되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진행된 대규모 이농에 따른 농촌 인구 과소화는 농촌 공동체의 인구학적 기반을 무너뜨렸다. 한편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유입된 많은 인구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공동체적 관계의 유지를 추구했다. 대표적인 것이 향우회, 동창회, 각종 계 등이다. 비록 삶의 장소는 도시로 이동했지만, 고향에서 형성된 공동체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재조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직들은 정서적 교류뿐 아니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도시에서 경제적 적응을 하는데 중요한 네트워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에서도 공동체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학자 힐러리(George Hillery)는 공동체의 세 가지 요소로 지리적 공간, 사회적 상호작용, 공동의 연대 등을 꼽았다. 현대사회의 현실 공동체들은 세 요소들이 다양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서구 학자들은 도시 공동체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근린(近鄰)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가 정체성과 정치적 효용감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도시의 근린 공동체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도시화는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사람들은 대규모 아파트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이사의 빈도가 잦다. 그 결과 같은 동네나 아파트에 살면서도 서로 잘 알지 못하여 근린 공동체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가 한국인의 중요한 거주 형태로 자리잡으면서, 여러 형태의 아파트 공동체가 등장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현대인들에게도 상호작용이나 연대에 기반을 둔 공동체는 여전히 중요하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공유하는 가치, 신념, 목표 등을 기반으로 집합적 감정과 공동의 연대를 형성한다. 특히 정보화와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시공간이 재구성되면서, 공동체에서 지리적 공간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물리적인 장소와 상관없이 온라인을 통해 상호작용하고, 공동체적 경험을 갖는다. 새로운 관계 방식을 통해서 친밀성, 정체성, 사회적 연대 등을 경험한다. 기술 혁신에 따라 장소의 제한이 약화되면서, 공동체의 범위가 매우 작을 수도 있고, 전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공동체 운동이 존재한다. 첫째, 지역이 강조되는 공동체 운동으로 도시 주민 운동, 지역 시민 운동 등이 있다. 이들은 일정한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특정 목표를 향해 함께 하는 운동이다. 서울의 마포에 위치한 성미산 마을과 성북 장수마을과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둘째, 협동조합 운동으로, 노동자나 농민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실천 운동이다. 그 대표적인 예인 생활협동조합은 도시에서 거주하는 소비자들이 유기 농산물을 통해 만든 먹거리 공동체 운동이다. 최근에는 그 규모가 커져 한살림, 아이쿱, 두레생협 등의 전체 회원 수가 전국적으로 5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또한 농촌과의 면 대 면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먹거리를 매개로 하는 신뢰 공동체를 지향한다.
세 번째로 소공동체 운동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공동체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야마기시즘(yamagishism)에 뿌리를 둔 화성 산안마을은 공동으로 생산한 유기농 계란을 바탕으로 급진적인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밖에도 충청남도 홍성의 홍동면, 전라남도 장성의 한마음공동체,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변산공동체,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진도리 마을, 경상남도 함양 청미래 마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 산내면 실상사 도농공동체 마을 등이 소공동체 운동의 예이다. 이들은 대개 자본주의적 문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지향한다. 또 도덕적 헌신, 인격적 친밀성, 구성원 간의 신뢰와 응집성 등을 강조한다. 이들 소공동체 운동은 농촌 지향성과 폐쇄성을 특징으로 한다.
넷째, 사이버 공동체 혹은 온라인 공동체가 현대인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해지고 있다. 인터넷이나 SNS, 그리고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을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많은 사이버 공동체들이 대화, 댓글, 클릭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친밀감을 나누고,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사이버 공동체 가운데 상당수는 오프라인 공동체와 상호작용함으로써, 흥미로운 사회현상을 낳기도 한다.
다섯째, 지역을 재발견하는 공동체 운동의 부상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지자체와 주민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행되어 온 마을 만들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의 마을 만들기는 지자체, 민간단체, 마을 리더, 지역 주민 등의 협치를 통해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공동체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꼭 필요한 관계 집단이다.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공동체는 여러 모양으로 진화하여 발전하고 있다. 경쟁적인 삶이 더 치열할수록 공동체에 대한 욕구는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공동체에서 강조되는 것은 상호작용에 기반을 둔 공통의 관심, 친밀성, 공감, 연대와 같은 가치들이다. 공동 사회와 이익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서, 공동체적 특성이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경직된 집단 개념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자본의 증대를 위한 공동체적 지향으로 정의하면 다양한 움직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공동체는 개념으로서나 실제 모습에서 유연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메타버스와 같은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며,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다른 한편으로는 면 대 면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역에서 강한 공동체를 추구하기도 한다. 현실 공동체의 변화와 분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