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농산어촌 지역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한 집과 집이 결합하여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을 교환하는 소규모의 지연적 생활공동체.
촌락의 개념
촌락의 역사: 지방 행정과 촌락
조선이 개국되어 군현 제도를 정비함에 따라 향 · 소 · 부곡은 없어지고 면리제(面里制)가 실시되었다. 조선 초에 간행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5호(戶)를 1통(統)으로, 5통을 1리(里)로 편성하고, 몇 개의 리를 합쳐 1면으로 하는 오가작통의 면리제를 규정하고 있다. 통에는 통수(統首)를, 이에는 이정(里正)을, 면에는 권농관(勸農官)을 두어 조세의 징수와 부역의 동원, 범죄와 유망의 방지 등을 자치적으로 규율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면리제는 명목상의 편제에 그치고 실제 운영에서는 말단 행정 기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수와 이정 및 권농관은 행정 실무의 집행자라기보다는 수령과 향리의 행정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었다. 이러한 면리제 아래에서 향촌 사회는 국가 권력을 배경으로 한 수령 중심의 행정 조직 체계와 유향소나 향약을 통해 자율적 향촌 지배를 모색하던 재지사족 세력이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연대하는 가운데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자연 촌락을 중심으로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자연 촌락은 주민들의 사회관계가 누적된 생활공동체로서 행정 조직과 재지사족의 압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한편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 제도를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갔다. 재지사족이 군현 단위로 향약(鄕約)을 결성하거나 여러 개의 자연 촌락을 묶어 동계(洞契)를 결성하여 주민을 교화하고 사족 중심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기층민들은 자연 촌락을 중심으로 촌계(村契)를 조직하여 자치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어려운 일에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기풍을 진작시키고자 하였다. 질서를 어지럽힌 자를 공동으로 규제하고, 도로와 우물, 동사(洞舍)를 공동으로 관리하며, 농업 노동과 길흉사 때의 협동을 위한 계, 두레, 품앗이 등의 협동 조직도 발전시켰다. 향약이나 동계가 사족 중심의 질서 확립과 주민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능적 결사체의 성격을 지녔다면 촌계는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적 결속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면리제는 시기에 따라 그 운영에 다소의 변화가 있었지만 대체로 조선 말기까지 이어져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종래의 오가작통제를 폐지하고 새로이 재편된 면리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이때 재편된 면은 조선시대의 면보다 범위를 훨씬 넓혀서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 삼고, 그 밑에 1~3개의 자연 촌락을 하나로 묶어서 행정 촌락인 법정리로 설정하여 명예직인 구장(區長)이 행정 실무를 뒷바라지하게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개편된 이러한 행정 구역이 대체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구역의 개편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주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자연 촌락을 중심으로 영위되고 있었다.
촌락의 분류
주거의 밀집 정도에 따라 집촌(集村)과 산촌(散村)으로 나눌 수 있다. 광활한 농경지를 배경으로 한 구미의 농촌에서는 농가와 농가가 서로 멀리 떨어진 산촌의 형태가 많지만, 산지가 많고 경작지가 협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집촌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경작지가 극히 한정된 산악 지역에서는 골짜기마다 한두 가구씩 거주하는 산촌을 이루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화전민촌이 있다.
촌락이 자리 잡은 지리적 위치에 따라 평야촌(平野村)과 산촌(山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넓은 들을 배경으로 하는 평야촌은 산촌에 비해 촌락의 규모가 크고, 경작지가 비교적 좁은 산촌은 평야촌에 비해 촌락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수리 시설이 정비되지 않았던 고대나 중세 시대에는 지대가 낮은 곳은 우기에 홍수의 피해가 빈번하여 촌락을 이루어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비교적 지대가 높은 산기슭이나 구릉 지대에 많이 거주함으로써 산촌의 비율이 높았다. 조선시대 이후 인구가 늘어나고 수리 시설이 정비되면서 점차 저지대로 촌락이 확산되어 평야촌이 늘어나게 되었다.
촌락이 형성된 과정에 따라 자연 촌락과 행정 촌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 촌락은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촌락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그 속에서 자족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자체가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성을 갖는 지역적 단위이다. 이는 고유한 촌락명을 가지고 다른 촌락과 구별된다. 공동의 수호신에게 동제를 함께 지내는 신앙 공동체이며, 전통적 규범이나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힌 자에게 공동의 제재를 가하는 규제 집단이며, 생업 활동이나 길흉사에 서로 돕는 생활공동체이다. 행정 촌락은 행정의 편의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구획한 일정한 범위로서 ‘○○리(里)’로 부른다. 대체로 2~3개의 자연 촌락을 묶어서 하나의 행정 촌락을 구성하고 있지만, 촌락의 규모가 크면 하나의 자연 촌락이 하나의 행정 촌락을 구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자연 촌락을 1리, 2리로 구분하여 두 개의 행정 촌락으로 나누기도 한다. 행정 촌락에는 이장(里長)을 두어 면의 행정 실무를 보좌하게 한다.
마을에 거주하는 종족 구성에 따라 종족촌락(宗族村落)과 각성촌락(各姓村落)으로 나눌 수 있다. 종족촌락은 한 종족이 여러 대에 걸쳐 거주하여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 마을로서 흔히 집성촌(集姓村)이라 부른다. 동족촌락 혹은 동성촌락으로 부르기도 한다. 종족촌락은 조선 중기 이후 여자가 재산 상속에서 제외되고, 혼인 후 남자가 처가 마을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던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 쇠퇴하여 분가한 형제들이 부모의 거주지 주변에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역사가 길고 지역 사회에서 잘 알려진 종족 마을의 중심 종족은 사회적 위세가 강한 양반 신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종족 마을에 거주하는 타성은, 중심 종족과 인척 관계에 있는 비슷한 신분의 양반인 경우도 있지만, 과거 이들에게 예속되어 있던 낮은 신분적 배경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이런 마을에서는 집의 구성 원리가 종족의 범위를 넘어 마을에까지 확대되어서 혈연적 요소가 마을공동체 운영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며, 과거의 신분적 차별이 여러 면에서 잔존해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세력이 비슷한 두 종족이 한 마을에 공존하게 되면 배타적 종족 결합 의식이 충돌하여 심각한 갈등이 유발되기도 하고, 세력이 약한 종족은 점차 마을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래서 종족촌락은 한 성씨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일성종족촌락(一姓宗族村落)이 주를 이룬다.
각성촌락은 여러 성씨가 혼재하여 혈연적 요소의 영향이 약해지고 지연적 결합이 주민들의 사회관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거주하는 주민들의 신분적 배경에 따라 양반들이 대대로 살아 온 반촌(班村)과 상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민촌(民村)으로 나눌 수 있다. 신분을 중시하던 전통 사회에서는 반상 차별 의식이 작용하여 유명한 조상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반촌은 민촌에 비해서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반촌이라 하여 양반들만 거주하였던 것은 아니다. 양반가에 예속되어 있던 상민이나 천민들도 마을에 함께 거주하였다. 이들은 양반가의 가사 업무를 보조하거나 양반가의 경작지를 대리 경작하여 생계를 영위하였다. 특수 신분층이 살았던 촌락은 특별히 구분해서 백정촌(白丁村), 재인촌(才人村), 광대촌(廣大村), 아전촌(衙前村) 등으로 불렀고 거주 지역도 제한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주민들의 생업 활동에 따라 농업을 주로 하는 농촌, 어로 활동에 종사하는 어촌, 금, 은, 동, 석탄 등을 채굴하는 광산촌, 화전을 일구어 생계를 이어가는 화전민촌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촌락의 자치 조직과 공동체 규제
집에 가장이 있고, 문중에 문장이 있는 것처럼 촌락에는 촌장(村長), 향장(鄕長), 존위(尊位) 등으로 불리는 최고 어른이 있어서 촌락 공동체의 운영과 사회 통합에 구심적 역할을 한다. 촌장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선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덕망이 있는 연로자 중에서 ‘동네 어른들’이 추천하여 동회에서 인준하는 방식으로 추대된다. ‘동네 어른들’은 촌장의 교유 집단으로서 촌장과 더불어 마을을 이끌어 가는 중심 세력이 된다. 촌장의 아래에 조선시대에는 이정(里正), 일제강점기에는 구장(區長), 해방 후에는 이장(里長)을 두어 실무를 담당하게 하고, 그 밑에 이임(里任)이나 소임(所任)을 두어 마을의 대소 잡역을 담당하게 한다. 이임이나 소임은 대개 마을에 거주하는 하층민이 맡는다.
촌락의 주요 사항은 마을 총회에서 결정한다. 마을 총회는 동회 또는 대동회라 부르는데 각호 1인씩 참여하여 평등하게 의결권을 가지는 민주적 의사 결정 기구이다. 촌장이나 이장을 선임하고, 도로의 보수, 공동 우물의 정비, 공동 임야의 관리, 주민들 사이의 노임 등 주요 사안을 협의하여 의결한다. 질서를 어긴 주민이 있을 때는 동회의 결의를 거쳐 공동으로 규제하기도 한다. 촌락의 공동체 규제는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상습 폭행, 성폭력 등 윤리적 규범을 해쳤을 때 주로 나타나는데 가벼운 위반일 경우에는 촌장이나 동네 어른들이 불러서 나무라거나 경고를 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심하면 사회적 격리, 동리매, 추방을 결의하기도 한다. 사회적 격리는 일상생활의 모든 사회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고, 서로 왕래하지 않으며, 금전 대차나 농기구 대여를 금지한다. 공동체적 생활을 영위하는 촌락 사회에서 사회적 격리는 매우 심한 고통이기 때문에 당사자는 대개 수일 내에 전체 주민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여 제재를 해제한다. 위반이 반복되거나 정도가 심할 때는 동리매를 행하기도 한다. 멍석말이를 하거나 동신목에 묶어 두고 주민들이 돌아가며 상징적인 매를 가한다. 한 마을에서 더 이상 함께 살아가기 어렵다고 판단이 되면 추방을 결의하기도 한다. 위반 행위가 파렴치하여 5일장에서 만나는 것도 심히 불쾌하다고 생각되면 시장권을 달리하는 ‘50리 밖으로 떠나라.’는 단서를 붙여 추방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동체 규제는 빈번하지 않지만 일단 결의되면 당사자나 그 가족에게는 매우 큰 불명예가 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매사에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한다.
촌락의 협동 조직
공동 신앙과 공동 연희
촌락 사회의 변화
참고문헌
단행본
- 이만갑, 『한국농촌사회의 구조와 변화』(서울대출판부, 1972)
- 문병집, 『한국의 촌락』(진명문화사, 1973)
- 최재석, 『한국농촌사회연구』(일지사, 1975)
- 고승제, 『한국촌락사회사연구』(일지사, 1977)
- 최재석, 『한국농촌사회변동연구』(일지사, 1988)
- 문옥표 외, 『근교농촌의 해체과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 이해준, 『조선시기촌락사회사』(민족문화사, 1996)
- 윤수종, 『농촌사회제도연구』(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 Han Sang-Bok, 『Korean Fisherman: Ecological Adaptation in Three Community』(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1977)
논문
- 김택규, 「마을생활」(『한국민속대관』 Ⅰ,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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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향촌 사회에서 유교적 소양을 갖춘 지식 계층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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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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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동네의 일을 협의하는 모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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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준다고 여기어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신격화하여 보호해 온 나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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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자리 잡아 앉다. 남을 높일 때나 점잖게 이를 때에 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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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살고 있는 지역을 연고로 하는. 또는 그런 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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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역이 있는 마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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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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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혼인 때에 쓰는 여러 가지 기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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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농사가 잘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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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물고기가 많이 잡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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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서낭당, 국사당 따위와 같이 신을 모셔 두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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