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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한 지방 특수 행정구역.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종기 (국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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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한 지방 특수 행정구역.

내용

향인(鄕人)은 소(所)·부곡(部曲) 주민과 같이 일반적인 양민과 달라서 그 신분이 노비·천민에 유사한 특수한 열등계급의 지위에 있었다.

그 발생은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정복전쟁에 패배하였거나 투항 또는 귀순한 집단의 정착지, 촌락 본래의 형태인 공동체의 보존과 사회계층의 분화에 따른 예속관계와의 대립·모순, 또는 반역죄인의 집단적 유배지, 귀화인의 집단마을, 기타 특수한 생산노비의 집단거주 등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사회발전에 따른 공동체의 통합과 붕괴, 계급분화에서 야기된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 초기 이전 향의 수는 138개였으며『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때는 향·소·부곡 합하여 13개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향은 부곡과 더불어 농업생산에 치중하였으며 국가에 대하여는 공과(公課)·공역(公役)을 부담하였고, 호장(戶長) 등 토착관리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향의 주민들은 국학(國學)에의 입학이 금지되고, 형벌에 있어서도 노비와 동등한 처벌을 받았으며, 자손의 귀속도 잡척인(雜尺人)과 같았고, 승(僧)이 되는 것도 금지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시대(高麗時代) 향(鄕)·부곡(部曲)의 변질과정(變質過程)」(박종기, 『한국사론(韓國史論)』6, 1980)

  • - 「천민(賤民)」(홍승기,『한국사』5, 국사편찬위원회, 1975)

  • - 「향(鄕)·소(所)·부곡고(部曲攷)」(김용덕, 『백낙준환갑기념국학논총(白樂濬還甲記念國學論叢)』,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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