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

사회구조
개념
중세 이후, 산업 구조가 농림어업 중심에서 분업과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
이칭
이칭
공업화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산업화는 산업 구조가 농림어업 중심에서 분업과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변하는 현상이다.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증기 기관의 발명 같은 기술 혁신으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촉발되어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다. 대량 생산으로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고 빈부 격차도 커지면서 풍요로움과 함께 빈부 대립과 갈등, 환경 오염 등의 문제점도 발생하였다. 고속 성장에 따라 사회 문화적 변화도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고부가 가치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탈공업화 현상도 생기게 되었다.

정의
중세 이후, 산업 구조가 농림어업 중심에서 분업과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
산업화의 역사적 전개 및 내용

1769년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 기관을 발명함으로써 촉발된 산업 혁명을 본격적인 산업화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통상적이다. 동력을 생산하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면서 경제 활동을 비롯한, 인류의 생활 양식 전반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인류의 본격적인 경제 활동은 최초 농경 사회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생산과 잉여물의 개념이 형성되고 잉여물의 교환이 확대되면서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발달한 도구의 사용에 따라 생산이 크게 증가하면서 문명의 발달이 도구의 개량에 크게 의존하게 되어 공업 부문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었다. 하지만 산업 혁명 이전까지는 기술 개발의 속도가 낮고 생산성 증가의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농림어업 중심이라는 산업 구조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혁명이 가져온 분업과 기술 혁신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생산성 향상을 불러왔고, 이에 따라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초기에는 제조업 중에서도 생활 필수품 위주의 경공업 분야에서 발전이 선행되었으나, 점차 중화학 분야의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고부가 가치 서비스업의 비중도 늘어났다. 특히 중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생산 도구의 품질과 성능을 좌우하는 소위 자본재 산업이 중요시되었고, 제일 차 세계 대전과 제이 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재 산업은 무기의 성능을 좌우하게 되었다.

산업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7~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 혁명이 일어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봉건 제도의 붕괴이다. 중세의 봉건 제도가 상대적으로 조기에 붕괴되면서 계층 간 이동이 시작되었고 이에 따라 자유농민을 고용할 수 있는 초기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개인에 의한 소규모 생산에서, 요소의 대량 투입에 의한 대규모 생산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둘째, 경제 정책의 변화이다. 농림어업 중심 정책에서 중상주의적 정책으로 변환되면서 부의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고, 자유주의적 경제 체제가 가능해졌다. 셋째, 철강 · 석탄 공업의 발달과 함께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운송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생산 요소 및 기술과 함께 제도적 여건까지 조기에 확립한 영국은 인도에서 싼값에 들여온 면직물을 대량으로 가공 생산을 하고 수출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남북 전쟁에서 상공인들의 비중이 높은 북군이 승리한 미국도 19세기 후반에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형성되었다. 또한 제일 차 세계 대전과 제이 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은 물론 일본, 독일 등 주요 참전국들은 생산 능력을 급격히 팽창시키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 싱가포르, 홍콩, 중국 등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수출을 지향하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산업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화를 통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였다. 농림수산업에 비해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 부문으로 생산 요소가 이동함에 따라 국가 전체 생산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둘째,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업 부문에 종사하던 인구가 공장 지대로 이동하여 제조업의 근로자로 전환되는 현상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의 새로운 기능과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및 직업 훈련 등 인력 양성이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었다. 셋째, 인력 공급이 용이한 지역에 대규모 공장들이 들어오고 도시화가 확산되었다. 전 세계 총인구에서 도시 인구의 비율이 2009년에 처음으로 50%를 넘었는데 선진 산업 국가들의 도시화율은 75%, 후발 개발 도상국들의 평균은 44% 수준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주택, 교통, 의료 등 다양한 사회 인프라의 수요도 발생하였다. 넷째,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공장이 건립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공기와 물 등 자연환경이 오염되고 범죄와 전염병이 증가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문제들이 발생하여 삶의 질이 나빠지는 측면도 있었다. 다섯째, 산업화의 진전으로 경제 및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사회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빈부 격차가 확대되어 대립 구조에 따른 분배의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대두되면서 연금, 보험 등 새로운 사회 제도가 도입되고 확산되었다. 여섯째, 경제 사회 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가족관계의 변화도 초래하게 된다. 제조업 및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여성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증가했고, 가정에서 남녀 간 역할 분담도 바뀌었다. 이에 따라 외식 문화가 확산되는 등 가정과 사회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농업 부문의 고용 비중이 50%를 넘는 수준에서 20% 이하로 줄어드는 시기를 산업화로 정의한다면, 덴마크, 프랑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 초기 산업 국가들은 산업화에 100년 전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벨기에, 노르웨이, 독일, 미국 등은 산업화에 50~75년 정도가 걸렸고, 반면 대만, 말레이시아 등 후발국들은 30년 이내에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한국은 19년 만에 산업화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업화는 경제 성장을 통해 소득 수준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 문화적으로도 광범위한 변화를 촉발하였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함께 인구의 도시 집중화, 핵가족화, 환경오염 등 중세 이후 새롭게 부각된 주요 문제들이 산업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산업화

한국에서 산업화의 시작을 개화기 또는 일제강점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본격적인 산업화는 군사 정부가 경제 개발 오 개년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963년 한국 정부는 경제 개발 오 개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정부 주도의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당시 축적된 자본 없이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외국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생산 요소의 분배는 물론 외자의 도입과 배분까지 산업화 과정의 전반을 정부가 주도하게 되었다. 민간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위 산업 정책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시행했고, 좁은 국토 면적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산업용 토지의 배분까지 정부에 의해 계획되고 이루어졌다. 산업화의 핵심 요소인 인적 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교육 훈련 제도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경제개발계획의 초기부터 독일식 직업 훈련 제도를 모방하여 기능 인력을 양성하였고 1982년 한국 산업 인력 공단을 설립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직업 훈련 및 지원을 실시하였다. 이는 국민적 교육열과 맞물려 단기간에 산업화를 달성한 것은 물론 사회 문화적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의 산업화 진전 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초기에는 생활 필수품 공급과 국산화 및 수출 산업화가 용이한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화를 이루었고, 이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부가 가치가 높은 중화학 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화의 축을 전환하였다. 초기 산업화를 통해 비약적 성장을 이룬 후, 1980년대 초중반과 1990년대 후반 두 차례의 외환 위기를 겪었으나 오히려 한국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인 대규모 산업 구조 재편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 산업 경제는 보다 선진화되고 글로벌화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기술 집약적 산업을 육성하는, 산업 전반에서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다. 소득 향상과 더불어 서비스 분야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유학 및 해외여행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발생한, 서비스 분야의 만성적인 무역 적자도 점차 감소하였다. 최근에는 K-Culture를 비롯한, 문화 상품의 경쟁력 향상에 힘입어 선진 서비스 산업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표 1>한국의 소득증가 추이 차트: 한국의 소득증가 추이(1960년 ~ 2021년)

자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이처럼 한국은 성공적인 산업화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1960년 20억 달러 수준이었던 국민 총소득의 수준은 2021년 1조 8,304억 달러로 증가하여 61년 만에 915배 증가하였다. 달러 표시 국민 소득이 연평균 11.8%씩 증가한 셈이다(<표 1> 참조).

<표 2> 한국의 산업 구조 변화(부가 가치 생산 기준: 명목)

자료: 통계청, 국가 통계 포털

이 같은 산업화의 진행을 산업 구조 변화 측면에서 살펴보면, 경제 개발 오 개년 계획이 시행되기 직전인 1960년 전 산업 부가 가치 생산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14.7% 수준에 불과하였으나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1970년에 20%를 넘었고 1987년에 30%를 넘어서면서 제조업 강국으로 변신하였다. 최근까지도 제조업의 부가 가치 생산 비중은 30% 전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농림어업 부문의 생산 비중은 1960년 39.3%에서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1988년에 10.2%에 이르렀고 현재는 4.3%에 불과하다(<표 2> 참조).

<표 3> 산업별 취업 구조 변화(단위:%)

자료: 통계청, 국가 통계 포털

산업화에 따른 산업 구조의 변화는 고용을 기준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전 산업 취업자 가운데 제조업 취업자의 비중은 1960년대 초 8.7%에서 1980년에 22.5%로 증가하였고, 1990년에는 27.6%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후 임금 상승과 기술 발전 등으로 산업 자동화와 고부가 가치화가 확산되면서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000년 제조업 취업의 비중은 점차 감소하여 20.4%, 2010년에는 17.1%로 줄어들었다. 한편,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어 1960년대 초 62.9%에서 1980년 34%로 급격히 감소하였고, 2000년에는 10.7%, 2021년에는 5.3%에 불과하다.

이처럼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생산 기준 또는 취업자 기준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농림어업의 비중이 감소하는 전형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으나(<표 3> 참조), 2000년대 이후에는 저임금 제조업과 농림어업 분야를 중심으로 비숙련직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근로자들은 취업난을 호소하고 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고용 시장의 미스매치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산업화와 한국 사회의 변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도 일반적으로는 앞선 자본주의 국가들과 비슷한 변화 양상을 보이지만, 단기간에 압축적인 산업화를 이루어 낸 결과로 보다 극단적인 현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급속한 소득 증가와 더불어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극단적인 노사 분규를 경험하였다. 1960~70년대 산업화 초기에는 정부의 노사 문제 억제 정책의 영향으로 외형상 안정된 노사 관계를 보였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정치적 민주화의 욕구가 확산된 것에 힘입어 근로 조건 개선에 대한 요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연간 노사 분규 건수가 1980년대 초 50건 미만이었으나 정치적 민주화의 흐름과 함께 1980년대 중후반에는 2,000건을 넘을 정도로 급증하였고 1987년에는 3,700건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1997~1998년 외환 위기를 경험하면서 한자리 수로 감소하였고 최근에는 근로 시간의 단축 등 근로 환경이 개선되면서 2018년 134건, 2019년 141건으로 줄었다.

농촌 인구의 대도시 유입이 지속되고 지역 개발이 확대되면서, 도시화율도 빠르게 높아졌다. 우리나라 인구의 도시화율은 1955년 24.4% 수준에서 1975년 48%를 넘었고 1995년 78.2%를 넘어 2020년에는 81.9%로 증가하였다. 급격한 도시화로 사회 간접 자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고, 주택난을 비롯한 생활 인프라 부족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현상도 초래되었다.

공업 부문의 인력 수요가 늘어나고 서비스 분야의 팽창에 따라 여성 인력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크게 늘어났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1995년 48.4%에서 2005년에는 50.3%로 늘어났으며, 2015년 51.9%, 2021년 53.3%로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는 늘어나는데도 제반 사회 여건이 이를 따르지 못하고 정부 정책의 전환이 늦어지면서 결혼 및 출산이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가임 여성의 출산율을 나타내는 합계 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 달했으나,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으로 1970년 4.41명, 1980년 2.72명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고 1983년에는 총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 이하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조기 대응하지 못했고 1996년까지 명목적인 출산 억제 정책을 유지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인구 억제 정책을 폐기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2018년에 1.0명 이하로 줄었고 2021년에는 세계 최저 수준인 0.81명을 기록하여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는 물론 총인구 감소까지 우려되는 인구 절벽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고급 인력 양성 정책 역시 우리 산업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으나, 이후 사회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1980년 27.2% 수준이었으나, 고학력 선호 사상과 대학 졸업 정원제 도입 등으로 1990년 33.2%로 늘어났으며, 대학 설립 자율화 정책으로 대학 정원이 크게 늘면서 2000년 68%로 급증하였고, 2008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83.8%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고학력화로 인해 제조업 부문에 필요한 젊은이의 인력 풀이 줄어들어 산업 인력난이 심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이 진학률도 73.7%로 현저히 줄어들어 고학력화가 다소 완화되고 있으며, 그 대신 외국 인력의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은 산업화를 통해 세계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압축적 단기 성장의 결실을 거두었고, 국력 신장과 함께 국민 생활 전반의 비약적 향상을 이루어 냈다. 이에 따른 부작용 또한 여타 산업화 선도 국가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이나, 경제 분야에서는 첨단 산업과 문화 산업의 발전 등 새로운 시장의 개척, 사회 문화 분야에서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성숙한 발전 등을 통해 한국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Todaro, Michail P. and Smith, Stephen C., Economic Development(11th edition)(Addison Wesley, 2010)
Sakong, Ill and Koh, Youngsun (eds), The Korean Economy: Six Decades of Growth and Development(KDI, 2010)
『한국경제 60년사』(KDI, 2011)
『한국 산업 발전 비전 2030』(산업연구원, 2019)

인터넷 자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http://kosis.kr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http://ecos.Bok.or.kr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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