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읍은 옮겨져도 우물은 남아 있네.’라는 시의 구절이 전해질 만큼 송경(松京)에는 우물이 많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광명사정은 개성대정(開城大井 : 한우물)·양릉정(陽陵井)과 더불어 개성의 3대 신정(神井)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광명사정은 고려왕조의 시조모신(始祖母神)격인 용녀(龍女)와 관련이 있는 만큼, 그 신성함이 각별하다고 보아야 한다. 『고려사』 세계(世系)로 미루어 고려왕조의 시조 전승은 여시조의 신성계보를 강조하고 있다고 추정되는데, 작제건(作帝健)의 아내이자 원창왕후로 추존된 용녀의 경우는 대정과 광명사정 등 두 우물에 의해서 그 신성함이 부각되어 있다.
따라서, 대정과 더불어 광명사정은 ‘시조모신의 우물’로 인식될 수 있고, 또 그런 관점에서 신라의 ‘알영정(閼英井)’의 후대적(後代的)인 표현이라고 인식될 수 있다. 더욱이, 왕조의 남계시조가 하늘에서 유래하는데 비해서 여계시조가 물에서 유래하고 있는 사례까지를 아울러 고려하게 되면 여성상징으로서 우물이 갖추고 있을 원형성이 대정이나 광명사정에서 유추될 수 있다.
여성원리가 개재된 물과 여성상징이 개재된 샘이 겹치면서 광명사정은 대정과 함께 여시조의 우물로서 신격화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광명사정은 작제건이 용녀를 아내로 맞이한 직후 그 구택 침실 바깥에 만들어진 우물이라고 전해져 있거니와, 용녀가 직접 판 것이라고 전해져 있기로는 대정과 다를 바 없다.
본래 서해 용왕의 딸이라고 전해진 용녀는 이 우물로 해서 서해와 송경 사이를 내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바, 이로 미루어 이 특이한 우물은 세속사회와 신성사회 내지는 현실세계와 피안세계가 서로 만나서 길을 트게 되는 교차점, 곧 교차 신성공간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하늘과 땅의 교차신성매체인 신단수(神檀樹)라는 세계나무와 능히 비견될 수 있는 우물이라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서 이 우물을 ‘세계의 배꼽’으로 간주하게 될 추론의 근거도 여기에서 얻게 된다. 그런 한도 안에서면, 『고려사』 세계에 보이고 있는 관음굴이나 아니면 고구려동명왕 전승에 보이고 있는 기린굴 등과 공통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될 수 있다. 그러나 용녀가 서해 용왕의 딸로 인식되어 있는 만큼, 바다신앙과의 관련을 광명사정에서 간과할 수 없다.
하늘과는 달리, 수평선 저 너머의 피안 내지 초자연의 세계 혹은 수직 아래쪽의 바다 밑 성역 공간을 구현하는 권화(權化)로서 용녀가 신봉되고, 이와 일체화한 우물로서 광명사정이 고려인의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라는 관찰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신라인의 동해용신 신앙과 고려인의 서해용신 신앙을 짝지어 볼 수 있게 된다. 한편, 광명사정 전승은 ‘금기와 그 파괴에 따르는 파국’이라는 형태로 피안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단절을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