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7개의 이야기토막으로 엮어져 있다. ① 환인(桓因)과 그 아들 환웅(桓雄), 그리고 환웅의 아들인 단군에 이르기까지의 삼대에 걸친 가계.
② 환웅이 아버지 환인의 도움과 허락을 얻어서 하늘에서 태백산(太白山 : 지금의 백두산)으로 내려오는 것. ③ 신단수(神壇樹) 아래 신시(神市)를 베풀고는 스스로 환웅천왕이라 칭하면서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된 일.
④ 곰이 호랑이와 함께 사람되기를 원하였다가 곰만 사람 여자로 화신한 것. ⑤ 그리고 이 여인, 곧 웅녀(熊女)가 사람의 몸으로 현신한 환웅과 혼인한 것.
⑥ 그 부부가 낳은 아기를 이름지어 단군왕검이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한 뒤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한 것. ⑦ 그가 1908세의 수(壽)를 누린 끝에 아사달산에 숨어 산신이 된 것 등이다.
이것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지하고 있지만,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와는 다소간의 변화가 있다. 실제로 ①에서 ③까지는 별로 다를 바 없으나, ④와 ⑤ 사이에서 크게 달라진다.
즉, ≪삼국유사≫의 웅녀가 사라지고 그 대신 환웅의 손녀가 등장한다. 환웅이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을 갖추게 한 후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한다. 이어 그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니 이름하여 단군이라 했고, 그가 조선의 지경에 의지해서 왕이 되었다고 ≪제왕운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④∼⑤에서는 크게 변화가 일어났다가 ⑥∼⑦에서는 다시 이들 문헌 사이에 크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변화가 많은 ④∼⑤부분을 두고 이들 문헌의 기록을 대비시켜보면, 적어도 주어진 겉문맥상으로는 매우 심각한 것임을 알게 된다.
단군의 어머니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인물인데도 한쪽은 곰이 화신한 여인이고, 다른 한쪽은 신이 화신한 여인이다. 단적으로 ‘동물(곰)/신’의 대립이 두 기록 사이에 있게 된다. 이 ‘동물/신’의 대립은 다시 ‘지상/하늘’이라는 양분적 대립을 함축할 수 있다. 또한 다 같이 단군의 어머니이면서도 ≪삼국유사≫에서는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부계(남계)의 가통(家統)에 혼인해 들어온 여성임에 비해, ≪제왕운기≫에서는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부계 그 자체의 혈통에 딸린 여인이다.
전자가 가통 바깥이라면 후자는 가통 안이다. 말하자면, 양자 사이에는 ‘바깥 존재/안의 존재’라는 대립이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어머니가 지닌 ‘안/밖’의 대립을 존중한다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단군의 출자(出自)에 대해서도 당연히 서로 다른 대립성을 보이게 된다.
곧 ≪삼국유사≫에서 단군은 환인/환웅의 뒤를 이은 부계의 3대인 데 비해, ≪제왕운기≫에서 단군은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가계로서는 4대째에 속하는 여인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제왕운기≫는 단군을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가통의 5대째 외손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 문헌 사이에서 ‘3대 부계/5대 모계’라는 대립을 지적할 수 있게 된다.
≪삼국유사≫에서는 부계(남계)를 따른 3대에 걸친 일종의 신통기(神統紀), 곧 신족보(神族譜)가 기술되고 있음에 비해, ≪제왕운기≫에서는 모계(여계)를 따른 5대에 걸친 신족보가 기술되어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이들 문헌 사이에는 이야기토막 ④와 ⑤를 두고 ‘동물(곰)/신’, ‘안/밖’, ‘부계 3대/모계 5대’라는 대립적인 양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제왕운기≫는 ≪삼국유사≫보다 불과 십여 년 늦게 간행된 책이다. 그 짧은 시기 사이에 이만큼 큰 변화를 지닌 신화가 전승되어 있었다는 것은 고려 때 와서 이미 단군신화의 서사구조상의 안정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 ‘곰(동물)/신’, ‘안/밖‘, ’부계/모계‘라는 대립은 보통 차이가 아니며, 의미작용이 거꾸로 뒤집힐 만큼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겹의 대립 가운데서 ’곰/신’ 사이의 대립은 비교적 쉽게 조정될 수 있다. ≪삼국유사≫의 “곰이 약을 먹고 사람 몸을 얻어 여자가 되다.”와 ≪제왕운기≫의 “신의 손녀가 약을 먹고 사람몸을 얻어 여자가 되다.”라고 하는 이 두 표현 사이에는 기층적인 공질성이 있는 듯이 보인다. 공질성은 곰도 신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착안함으로써 얻어내게 된다.
이로써 양 기록의 문제된 부분에 담겨 있는 공통의 기층을 요약하면, “사람 아니던 존재가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을 얻어 여자가 된다.”와 같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공질의 기층을 가진 게 사실이라면 ‘곰/신’ 사이의 대립을 조정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인간 아닌 다른 존재가 약을 먹고 변신해서 혼인함으로써 단군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두 기록 사이에 차이가 없다.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및 극동의 북부지방에 깔려 있던 이른바 곰신앙을 고려한다면 ‘곰/신’의 대립의 조정은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두 기록 사이의 대립의 조정은 여기서 그치고 만다. ‘안/밖’, 그리고 ‘부계/모계’의 조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왕조의 전설에 부계와 모계가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 참고가 될만하나, 어떤 직접적인 해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편 단군신화가 전승된 기록으로 평가되는 ≪세종실록≫ 지리지의 단군에 관한 기록 중에서, 문제된 ④와 ⑤의 이야기토막은 ≪제왕운기≫를 답습하고 있다.
이러한 변이에도 불구하고 단군신화는, 첫째, ‘하늘에서 하강한 천신이 비로소 나라를 열고 왕의 자리에 나아간다.’라는 서사진행에 있어서, 둘째, 신맞이굿의 절차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셋째, 신화·전설의 복합체라는 점에서 나머지의 이른바 ‘건국신화’ 또는 ‘왕권신화’라고 일컬어지는 신화들과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공통성을 기반으로 해서 시베리아의 무속적 서사시 및 일본의 일부 왕권신화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단군신화를 가장 오래된 신화로 잡게 된다면 단군신화가 지닌 세 유형상의 특질을 우리 나라 건국신화들의 원형으로 자리잡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단군신화의 기본적인 이야기의 축은 ‘하늘에서의 내림’과 ‘왕국의 건설’에 있음을 지적해도 좋을 것이다. 이 두개의 기본축에 ‘씨족의 건설’을 대입한다면 신라 6촌장의 씨족신화, 기타 여러 후대의 씨족신화의 기본적인 유형이 잡히게 된다.
≪삼국유사≫ 혁거세왕조의 기록으로 보아 씨족신화의 바탕 위에 왕권신화가 형성되었다고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왕권신화와 씨족신화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나라/집(가문)’의 대립이 말해주는 차이밖에 없다.
‘하늘에서의 내림’과 ‘왕국의 건설’을 기본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단군신화도 그 밖의 건국신화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하늘에서 내린 제1세대가 직접 왕국을 건설하지 않고, 제2세대가 건설하게 된다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두 세대 위에 하늘의 세대가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신인 첫 세대는 보내는 사람(파송자) 구실을 하면서 하강하는 자를 도와준다.
첫 세대와 둘째 세대 사이에는 ‘천상의 신/지상의 신’, ‘파송자/파송되어 하강한 존재’라는 대립성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 둘째 대립은 ‘과업을 위임한 자/과업을 맡은 자’라고 함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강한 신인 제2세대와 제3세대 사이에는 ‘천왕/왕검’, ‘산 위 신단수 아래의 신시/평양 도읍의 왕국’이라는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천왕/왕검’ 사이에는 ‘하늘/땅’, ‘신성/세속’ 등의 대립이 끼어 있음직한 것이다. 그것은 ‘산 위의 신단수/평양이라는 도읍’ 이외에 ‘신시/왕국’이라는 대립에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환웅은 종교성 짙은 무속적인 통치자였고, 단군은 세속과 관련된 무속적 왕이었다고 구별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전자쪽에 무당 내지 샤먼으로서의 성격이 보다 더 강하게 투영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삼국유사≫의 “바람의 신[風神], 비의 신[雨神], 구름신[雲神]등을 거느리고는 곡식과 목숨과 질병과 형벌제도와 선악의 구별 등을 다스리면서 인간세상의 삼백예순 일들을 갈무리하였다.”고 하는 기록대로라면 환웅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이른바 ‘문화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며 제도를 비로소 창조해 ‘자연/문화’의 대립을 인간들에게 주면서 그 대립을 조절한 최초의 존재가 환웅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가 다스리는 곳의 중심은 신시라고 불렀다. 종교적 성역이었던 셈이다. 환웅은 천신으로서 다스리되, 산 속 신단수 주변의 성역을 중심으로 한 특정 공동체의 신령이자 제사장이자 통치자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직접신인 복합관념을 찾아내기는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러한 환웅에 의해 고조선의 기틀은 이미 잡혀진 것이다. 하늘에서 하강한 제1세대가 직접 지상의 통치자가 된다는 점에서 환웅은 오히려 혁거세나 수로왕에 견주어져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를 이야기할 때 이와 같은 기초를 놓은 자로서의 환웅의 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환웅과 단군 사이에는 ‘부/자’, ‘예비자/완성자’, ‘천신/지상원리에 감염된 신격’이라는 세 겹의 대립이 있음을 알게 된다.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3세대는 ‘과업을 위탁한 자·과업을 예비적으로 수행한 자·과업을 마무리지은 자’라는 연속성을 보인다.
나머지 건국신화에서는 단군신화와 같은 하늘의 세대가 보이지 않고, 단군신화에서의 제2·3세대의 기능이 하늘에서 직접 천강한 제1세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단군신화는 그 서사구조나 등장인물의 성격에 있어 나머지 건국신화들의 규범형식을 다 갖추고 있거니와, 그것은 고조선이 최초의 왕국으로 인식되어 있는 사실과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군신화는 우리 나라 서사문학 일반의 3대기의 원형이 되고, 아울러 후대의 각종 마을굿의 원형으로서 마을굿을 통해 되풀이 반복, 실연되면서 이 땅 민속신앙의 지배적 이념구실을 다해온 것이다. →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