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 신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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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가락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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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
작품
금관가야의 시조 신인 김수로왕에 관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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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수로왕신화는 금관가야의 시조 신인 김수로왕에 관한 신화이다. 시조신화이자 건국신화로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에 전한다. 건국자인 수로의 탄생과 혼사, 즉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을 줄거리로 삼은 점은 다른 건국시조 신화와 같다. 그러나 씨족연합사회의 통합된 군장으로 강림했고, 하늘에서 신의 목소리가 내리자 구지봉에 모인 아홉 사람의 추장이 그 신탁에 응답하여 춤추고 노래하면서 신내림을 받드는 신맞이 신화라는 점은 다른 부분이다. 오늘날 별신굿과 도당굿의 신맞이 부분은 상고대 신화의 남겨진 모습으로, 무당 개인 및 한국인의 집단적 종교체험이 된다.

목차
정의
금관가야의 시조 신인 김수로왕에 관한 신화.
내용

시조 신화이며 건국신화로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에 전하는데, 건국자인 수로왕의 탄생과 혼사, 그리고 즉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력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 「김수로왕신화」는 「단군신화」「박혁거세신화」 혹은 「동명왕신화」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건국 시조신화로서 「김수로왕신화」는 왕국에 신성함을 부여하고, 아울러 왕권 자체를 신성화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의 뜻대로 지상을 다스리는 첫 군왕이 곧 김수로왕이고, 그러한 왕을 받들고 있는 거룩한 왕국이 곧 금관가야라는 이념이 다른 건국 시조신화와 마찬가지로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신화는 몇 가지 점에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여러 씨족이 연합되어 이룩된 통합적인 왕국의 창건에 관한 신화라는 점에서 각별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즉, 개벽한 뒤로 국호도 없이 다만 아도간(我刀干) · 여도간(汝刀干) 등 아홉 사람의 추장이 백성들을 통솔하고 있는 땅에 김수로왕은 하늘의 신으로서 강림하였다. 주인공이 이 같이 씨족연합사회의 통합된 군장으로서 하강했다는 점에서는 「박혁거세신화」와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신화 내용이 직접 신에게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3월 계욕일에 즈음하여 구지봉에 2백∼3백 인의 무리를 거느리고 모인 구간(九干)은 직접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에 응답하였고, 그 결과 신의 내림을 받았다. 그 목소리는 “황천(皇天)이 나로 하여금 이곳을 다스려 새로이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기에, 내 여기에 내리고자 하노라.”고 하면서 구간들에게 춤추고 노래하며 그를 맞이하기를 요구했고, 하늘의 신이 시키는 대로 실행하여 신을 맞이한 부분이 「김수로왕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신이 직접 인간에게 한 말을 신탁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무속신앙에서는 그것을 ‘ 공수’라고 부른다.

「김수로왕신화」는 공수와 공수의 내용대로 사람이 실천한 행동을 중핵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이 신화의 신화다움은 신 자신에 의해 결정되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신이 직접 이야기한 신 자신에 관한 얘기가 곧 이 신화의 핵이다. 인간은 그것을 받아서 옮긴 것뿐이다. 신화의 공수다움은 우리 신화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속성이나, 그것을 문헌에서 분명하게 전해주고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김수로왕신화」이다. 그런 뜻에서 이 신화는 한국신화가 지닌 기본적인 성격을 성문화(成文化)해서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셋째, 이 신화는 ‘신맞이 신화’라는 것이다. 신내림을 받드는 신맞이 신화라는 성격은 「박혁거세신화」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공수다움과 신맞이라는 두 요소가 어울림으로써 한국신화의 기본적인 유형을 얻게 된다. 공수를 받들어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사람들이 신내림을 받은 얘기라는 한국신화의 기본 골격이 갖추어진 것이다. 신맞이 신화는 당연히 신맞이굿과 겹쳐져 있다. 실제로 「김수로왕신화」는 신이 하늘에서 소리하면서부터 지상에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이란 사람들이 공수를 받들어 노래하고 춤춘 부분이자 육체로 연행된 신화란 점에서, 이 신화는 굿과 짝지어져 있다. 신화가 말로써 하는 풀이라면, 그 풀이가 사실은 말에 담겨 표현되기 이전에 행동에 담겨 표현되어 있었다.

「김수로왕신화」가 지닌 구술적인 서사진행은 먼저 육체에 의거해 있었다. 이 사실은 우리 신화의 기원에 관한 좋은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른바 제의학파적(祭儀學派的)인 신화기원론이 적용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이 신화 속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김수로왕신화」가 곧 굿이었다는 명제는 오늘날에까지 남겨져 있는 굿을 신화와 연관지어서 바라볼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실제로 이 신화의 줄거리, 특히 신맞이 부분은 오늘날의 별신굿의 신맞이 절차를 연상시켜 주기에 알맞다. 그런 뜻에서 고구려의 수신제(隧神祭)의 기록과 함께 「김수로왕신화」는 한국 민속종교를 통시적으로 부감할 수 있는 시발점으로서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에 남겨진 별신굿과 도당굿은 「가락국기」의 신맞이 부분과 수신제를 재현하고 있다. 별신굿은 상고대 신화가 오늘에 남겨진 모습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별신굿의 원류로서 부각되는 「김수로왕신화」는 한국인의 신명 내지 신바람의 원형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신명이 신이 지펴서 나타나는 앙분상태와 도취상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당 개인의 종교적 체험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별신굿이나 도당굿에서 집단적으로 겪는 종교적 체험이기도 하다.

별신굿에서 신내림은 원칙적으로 무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별신굿이 진행되면서 무당이 겪은 신지핌의 상태는 마을 안에 번져간다. 접신 상태의 집단적 감염현상이 일어나고, 거기에 춤과 노래와 더불어 흥이 더해지면 별신굿판의 신명은 아주 결정적인 것이 된다. 「김수로왕신화」는 춤과 노래로 받든 신내림 부분을 통해 가장 오래된 신바람의 현장을 오늘에 전해 주고 있다. 「김수로왕신화」는 결국 건국 시조신화라는 골격 속에서 다른 신화들에서 볼 수 없거나, 볼 수 있다고 해도 단편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한국 종교사적인 의미를 가장 풍족하게 간직하고 있다. 신화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신화와 무속연구』(김열규, 일조각, 1977)
『한국의 신화』(김열규, 일조각, 1976)
「수로왕고」(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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