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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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서 10월에 행하던 제천의식.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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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東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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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동맹은 고구려에서 10월에 행하던 제천의식이다. 동맹에 관한 기록은 『삼국지』·『후한서』 등에 처음 나타난다. 동맹은 고려 말기까지 팔관회로 이름이 바뀌면서 1,500년 동안 지속하였다. 고대 부족사회 공동체 제의에서 시작하여 국왕 즉위식 등 왕궁 제의에까지 승화·발전하였다. 현재 동맹의 형태는 제주도 동제 및 몇몇 촌락공동체의 농경의례 등으로 남아 있다. 이들의 제사 시기는, 대부분 정초와 정월대보름이지만, 10월의 사례도 적지 않다. 동맹을 통해 농경민족의 유구한 농경의례와 풍요·다산의 전통을 짐작할 수 있다.

목차
정의
고구려에서 10월에 행하던 제천의식.
내용

‘동명(東明)’이라고도 한다. 동맹에 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 『후한서(後漢書)』 등에 처음 나타난다. 『후한서』에서는 “10월로써 하늘에 제사하고 대회하니 이름하여 동맹이라 한다. 그 나라 동쪽에 대혈이 있는데 수신이라 부르고, 역시 10월로써 맞아서 제사한다(以十月祭天大會 名曰東盟 其國東有大穴 號隧神 亦以十月迎而祭之).”라고 기록하였다.

「위지」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전도 대략 같은 내용의 기록이나 다만 “수신을 맞아서 나라 동쪽 높은 곳에 모시고 제사할 때 목수를 신좌에 모셨다(迎隧神 還於國東上祭之 置木隧於神坐).”라고 약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수(隧)는 굴 · 구멍 · 대혈신(大穴神)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목수(木隧)는 목각(木刻)의 굴신상(窟神像)이라는 뜻이 된다.

한편, 『주서(周書)』(7세기)나 『북사(北史)』(7세기)의 고구려전에도 “또 신묘 두 곳이 있으니, 하나는 부여신이라 하며 나무로 깎은 부인의 상을 만들었다. 하나는 등고신이라 부르니 이는 그 시조인 부여신의 아들이라 한다. 같이 벼슬을 두고, 사람을 보내서 수호하는데 아마도 하백녀와 주몽을 말하는 것이리라(又有神廟二所 一曰夫餘神 刻木作婦人之象 一曰登高神 云是其始祖 夫餘神之子 竝置官司 遣人守護 蓋河伯女 與朱蒙云).”라고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위지』 동이전 한전(韓傳)에도 “5월에 씨 뿌리기를 마치고 난 뒤와, 10월에 농사를 마치고 나서도 귀신을 제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동맹의 10월 제천은 농경의례로서 부족사회 공동체의 추수감사제였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굴을 성소(聖所)로 삼고 여신상을 모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도 아울러 짐작할 수 있다.

동맹은 고려팔관회(八關會)로 계승되었음을 『송사(宋史)』(1345)의 “나라 동쪽에 굴이 있고 세신이라 부른다. 늘 시월 보름에 맞아서 제사하는데 이것을 팔관재라 한다. 그 의례가 매우 성대하여 왕과 비빈이 다락에 오르고 크게 풍악과 연음을 베풀었다(國東有穴 號歲神 常以十月望日迎祭 謂之八關齋 禮儀甚盛 王與妃嬪登樓大張樂宴飮).”라는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도 그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1124)에서 10월 동맹을 팔관재라 부르고, 처음 왕위를 계승한 해와 3년에 한번은 대제를 지내고, 그 조묘(祖廟)가 동문 밖에 있다는 등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 동맹이 팔관회로 계승되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결국 동맹은 고려 말기까지 팔관회로 이름이 바뀌면서 1,500년을 유구히 계승되었고, 고대 부족사회 공동체의 제의에서 비롯하여 국왕 즉위식과도 관련을 가지는 등 왕궁 제의에까지 승화,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폐지되었다.

그러나 동굴을 성소로 여기고, 여신을 모시며, 촌락공동체가 농경의례를 지내는 형태는 지금도 고형(古型)을 다분히 지니는 제주도 동제[部落祭]에서 잘 드러나고 있으며, 본토의 몇몇 지역에서도 그러한 형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의 동제당(洞祭堂)도 신목(神木)만을 모시는 형태가 제일 많고, 여기에 작은 당집이 곁들여지는 경우도 있으나, 동굴이 있으면 그것이 당으로 모셔지는 비율은 매우 많다. 그리고 이제는 목신상을 모시는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우나, 이러한 당에 찾아가는 것을 흔히 할망당에 간다고 한다. 본토에서는 굴을 당으로 모신 사례의 보고는 2, 3건뿐인 듯하나, 거기에는 여서낭신 관념도 있다.

아직도 동제신은 여신 관념이 강하여 동제당 서면조사의 통계를 보면, 여신이 남신의 2배를 넘는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제사 시일도 정초와 정월대보름이 많으나 10월의 사례들도 결코 적지는 않다. 이상으로써 고금을 통한 농경민족의 유구한 공동 농경의례와 풍요다산의 여신숭배 관념의 전통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한국민속학개설』(이두현·장주근·이광규, 보성문화사, 1974)
집필자
장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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