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 ()

목차
민간신앙
인물
원광대학교와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재임하여 민속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민간신앙연구』, 『한국민속학원론』, 『한국의 무속신화』 등을 저술한 민속학자.
이칭
남강(南剛)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7년
사망 연도
1996년
본관
김해(金海)
출생지
충청남도 서산시
목차
정의
원광대학교와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재임하여 민속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민간신앙연구』, 『한국민속학원론』, 『한국의 무속신화』 등을 저술한 민속학자.
내용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남강(南剛). 충청남도 서산 출신. 아버지는 용권(容權)이다. 고향에서 태안중학교를 졸업한 뒤 인천고등학교를 거쳐 1963년에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6년경희대학교 대학원(민속학 전공)을 졸업하고 1977년 일본 동경교육대학 대학원에서 「한국무속의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강사를 거쳐서 1969년부터 국제대학 전임강사로 있다가 1971년 원광대학교 교수로 전직하여(1971∼1978) 민속학연구소장, 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에 경희대학교로 복귀하여 계속 재직하였고, 민속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학회 활동에도 진취적이어서 한국종교사학회 이사(1969∼1981), 한국대학박물관협회 부회장(1973∼1976), 아세아민속학협회 회장(1978∼1981), 그리고 민속학회 이사로도 다년간 활동하였고 말년에는 한국민속학회 회장(1993∼1995)을 역임하였다.

그는 민속학에서 민간신앙, 특히 무속분야에 관심을 집중시켰고, 무속에서도 문학이나 연희 등 어떤 측면에 기울지 않고 어디까지나 종교적 내용을 일관되게 연구했던 종교민속학자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무속에서 민속학의 본령인 현지조사에 많은 힘을 쏟은 학자였다. 그러한 현지조사 작업을 주로 30대에 이루었고, 40대에는 자료수집의 결과를 종합하고 체계화하는 저술의 기간으로 보다 많이 활용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민속학자들이 중국이나 몽골지역으로 현지조사 작업에 나서는 기운이 싹트게 되자 그는 다시 몽골지역의 현지조사에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기관지가 다소 약했던 그는 호흡기 질환이 도져서 회갑을 채우지 못하고 작고하였다.

주요 편저서로 『황천무가연구(黃泉巫歌硏究)』(1966)·『한국무가집』4권(1971∼1979)·『한국민속학』(1973)·『한국무속연구』(1981)·『한국무속도록』(1982)·『한국민간신앙연구』(1983)·『한국민속학원론』(1984)·『한국의 무속신화』(1985) 등이 있고, 그 밖에 많은 공저와 논문들이 있다. 또한 다년간의 현지조사에서 얻은 많은 사진자료, 녹음테잎, 민속자료들도 남기고 있다.

집필자
장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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