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진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으로 바닷가의 해령산 위에 있다. 당은 1950년대에는 골기와 지붕 한 칸 크기의 당에 해랑지신위(海娘之神位)와 김대부지신위(金大夫之神位)라고 쓴 두 위패만이 있었다.
1990년대에는 평기와 지붕으로 바뀌고, 두 위패 뒤 벽면에는 각기 남녀신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남자의 생식기 형태가 당 안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이러한 풍습이 사라졌다. 해랑제는 음력 정월 15일과 9월 9일에 유교식으로 지내며, 때에 따라서는 12거리굿의 풍어굿을 지내기도 한다.
동해안일대의 어촌에서는 나무로 남자의 생식기 모양을 깎아 새끼로 엮어 바치는 관습들이 지금도 더러 잔존하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해랑당의 특징이다.
현지 주민들은 이 생식기를 보통 ‘신(腎)’이라고 한자말로 부르고 있다. ‘신’은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글자이다. 이 신을 어부들이 출어할 때 깎아서 바치고 나가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속신이 있어서 지금도 그대로 행하고 있는 마을도 있다.
옛날에는 이런 당이 많았을 것이나, 지금은 대개 사라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형태가 바뀐 경우도 많다. 안인진의 해랑당은 그 변화형의 하나로, 안에는 ‘신(腎)’ 대신에 두개의 위패만 놓여 있고 예전에 깎아 바쳤다는 신은 보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이 마을의 경우 신앙을 없앨 수 없는 어민생활이라, 해랑신이 혼인하였으니 이제는 신은 깎아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변형되어서 잔존하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또 경포대 바로 옆 강문동 여서낭당에는 여신의 무신도가 걸려 있으나, 이 여신에게는 동제 때 우랑(牛囊 : 소의 불알)을 바친다고 한다. 역시 해랑신과 같은 신앙관념의 변화형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게 생식기를 헌납하게 된 내력을 말해주는 설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한 마을 처녀가 바닷가에서 미역을 따고 있다가 배를 젓고 지나가는 총각을 보고 나서 상사병이 들어서 앓다가 죽었는데, 그 뒤부터 고기가 안 잡혀서 야단이었다.
그 때 한 어부의 꿈에 처녀가 나타나서 고기를 많이 잡으려거든 남자의 생식기를 깎아 바치라고 일러주었다. 처녀의 말대로 한 어부는 그 뒤부터 늘 고기를 많이 잡았고, 그것이 퍼져서 훗날 해랑당 신앙 형태가 생겼다고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생식기 헌납 신앙도 일종의 성기숭배(性器崇拜, phallism)로, 널리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는 원초적 신앙형태의 오랜 모습이다. 그것은 유교적인 윤리관념이 강한 한국사회의 드문 잔존형태로 동해안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