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禭神·禭神)이라고도 한다. 수신을 우리말의 음역, 즉 남신을 뜻하는 ‘수ᄀᆞᆷ’의 음역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한자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만 어떤 표기가 옳으냐에 따라 그 뜻이 ‘동굴신’ 또는 ‘곡물신’이 된다.
그러나 어떤 표기를 따르든지 간에 수신은 동굴이 생명의 모태를 상징한다는 점 등에서 풍요·농업과 관련되는 지모신(地母神)으로 간주되며, 또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고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와 동일시된다. 따라서 수신은 농업신·지모신·시조신의 복합적 성격을 가진 신격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수신이 국도의 동쪽에 있는 수혈(隧穴)이라는 큰 동굴 속에 있다고 여겼는데, 1983년에 국내성(國內城) 터 동쪽 17㎞ 지점인 태왕향(太王鄕) 하해방촌(下解放村 : 옛 이름은 上羊魚頭) 동남쪽에 우뚝 솟은 산의 중턱에서 수혈 유적으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수신에 대한 제의는 수혈에서도 거행되었지만, 매년 10월에 열리는 국가적 제의인 동맹제(東盟祭) 때 수신을 국도에 잇닿아 있는 하천으로 모셔 와 목수(木隧)를 신좌(神座)에 두고 국왕이 친히 제사했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여기서 목수란 수신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수신의 신체(神體)로서 나무로 곡물 다발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과 신간(神竿)으로 보는 설이 있다.
신을 맞이해 제사하는 것은 동제(洞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일 뿐 아니라, 이러한 제의 과정은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유화가 동명왕을 잉태하는 과정의 한 부분을 재연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신에 대한 제의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는 물론 고려시대까지 계속되었다고 전하는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