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양왕

  • 역사
  • 인물
  • 삼국
고구려의 제18대(재위: 384년~391년) 왕.
이칭
  • 본명어지지(於只支), 이련(伊連), 이속(伊速)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39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서영대 (인하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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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구려의 제18대(재위: 384년~391년) 왕.

개설

재위 384∼391. 이름은 이련(伊連) · 이속(伊速) 또는 어지지(於只支)이며, ‘국양왕’이라고도 한다. 고국원왕의 아들이며, 광개토왕의 아버지이다. 형인 소수림왕의 후사가 없으므로 즉위하였다.

소수림왕 때의 국가 제도 정비를 통하여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쪽으로는 385년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군과 제3현도군을 점령하는 등, ≪자치통감≫(권106) 호삼성(胡三省)의 주에 의하면, 385년 이후 “후연은 고구려를 능히 이기지 못하였다.” 고 할 정도로 후연에 대하여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때 확보한 요동 · 현도의 두 군은 386년 다시 후연에 빼앗겼다. 또, 남쪽으로는 386년 백제를 공격하였고, 389년과 390년 백제의 침공을 받는 등 백제와 공방전을 되풀이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북으로는 후연, 남으로는 백제와 대립하면서 국력을 신장하였다.

한편, ≪삼국사기≫에 따르면, 392년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신라 내물마립간으로 하여금 실성(實聖)을 인질로 보내게 하였고, 또 불교신앙의 확대를 꾀하였으며, 국사(國社), 즉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고구려 세력권의 확대나 불교이념의 보편화 및 왕실시조신앙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제사체계 정비 등의 사상정책을 전하는 주목할만한 기사이다.

그러나 광개토왕릉비에 의하면, 392년은 광개토왕 2년에 해당되는만큼, 그것을 고국양왕 말년의 사실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광개토왕의 사실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는 검토의 여지가 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

  • - 『삼국유사』

  • - 『광개토대왕릉비문』

  • - 『자치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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