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의 어머니인 유화부인(柳花夫人)을 가리키며, 유화가 부여에서 살다가 부여에서 죽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북주서 北周書』에 의하면, 고구려 왕도에는 부여신을 모신 사당이 있고 사당 안에는 나무로 만든 부인상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또 이곳은 등고신(登高神 : 北史에서는 高登神), 즉 주몽을 모신 사당과 함께 관리하는 관청을 두고 지키는 관원을 파견할 정도로 국가적으로 중시되던 성지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646년(보장왕 5) 동명왕 어머니의 소상(塑像)이 3일간 피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비록 신상을 만든 재료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도 이 사당에 모셔진 신상일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유화를 농업신으로 신앙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구려의 농업신은 나무로 만든 곡물 다발 같은 것으로 표현되었던 것이었는데, 6세기의 사실을 전하는 『북주서』에서 이 신의 상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고구려 농업신 신앙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견해도 있다.
한편, 『고려도경』에는 개성 선인문(宣仁門) 밖에 나무로 만든 동신성모상(東神聖母像)을 모셔둔 동신사(東神祠)라는 사당이 있어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동신성모는 곧 주몽의 어머니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이 신에 대한 신앙은 고려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