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은 하늘 자체 또는 하늘을 관장한다는 신(神)이다. 고대 왕국의 건국신화 시조왕들은 예외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일 정도로 하늘 신앙의 연원은 깊다. 하늘이 지닌 광대무변함에서 오는 절대적인 위엄과 권위, 청명함으로써 지니는 공명정대함, 무궁한 기상변화 포용으로 표상되는 조화, 해와 달의 품으로서 간직되는 신비함 등이 어울려 천신 신앙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천신 신앙에서는 하늘님·하느님 등의 호칭 이외에 도교식의 옥황상제, 불교의 영향을 받은 제석 등의 호칭도 사용되었다. 현재에도 민간 신앙이나 민속신념에서 하늘 숭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늘님 · 하느님 · 하나님 등의 호칭이 쓰인 이외에 제주신화의 천지왕, 중국도교의 영향을 입은 옥황상제(玉皇上帝) 또는 『삼국유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불교의 영향을 입은 제석(帝釋) 등의 호칭도 사용되어왔다. 「가락국기(駕洛國記)」에서는 단순히 ‘황천(皇天)’이라고만 호칭되어 있기도 하다.
고구려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동맹(東盟)’의례를 치렀고 백제 또한 천지에 제사지내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참조하자면, 천신 신앙의 유래는 이미 부여 · 고조선 및 삼한 당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에다 신라의 영성제(靈星祭) · 일월제 · 오성제(五星祭) 및 고구려의 영성제 등까지 고려한다면 우리 상고대사회의 하늘신앙은 보다 더 다양하였을 것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하늘신앙 및 천신 신앙의 유원(悠遠)은 하늘이 지닌 광대무변(廣大無邊), 즉 상천(上天)이라 일컬어짐으로써 지니게 되는 절대적인 위엄과 권위, 청명함으로써 지니게 되는 공명정대함, 기상의 무궁한 변화를 포용하고 있음으로써 표상(상징)되는 조화, 그리고 일월의 품으로서 간직하게 되는 신비함 등등의 관념이 어울려서 이룩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천신은 우리 나라 사람에게 가장 완벽한 ‘아버지 상(像)’을 부여하게 된 것이므로, 그것을 한국적인 대부신상(大父神像)의 원형으로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인자함과 엄숙함, 공명함과 조화의 힘, 엄격한 판관의 위엄 등을 고루 갖춘 초월적인 인격체로 인식되는 대부신상은 천신에서 비롯된다. 동시에 그것은 한국적인 ‘초자아(超自我)’의 원형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우리의 천신 숭앙은 부여 · 고구려 · 가락 · 신라 · 고조선 등 상고대 왕국의 시조왕이 나라의 창건주로서 그리고 문화영웅으로서 지상에,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신격적인 존재로 인식됨으로써 구체화된다. 이들 상고대 시조왕들은 예외 없이 하늘에서 내림한 천신이자 지상왕국의 왕으로서 생각되고 섬겨진 존재들이다.
이같이 시조가 하늘에서 내림한 신이라는 관념은 한 씨족의 시조신화에도 비쳐져 있거니와, 신라 육촌(六村)의 시조들에 관한 신화를 그 보기로 들 수 있다.
이것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이나 박혁거세왕(朴赫居世王)이 각기 주어진 왕국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 · 경주 박씨의 시조로 섬겨져온 것으로 보아서 매우 자연스러운 신화적 발상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상고대 신화에서 또 다른 구체적인 천신상은 부여의 해모수(解慕漱)에 관한 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모수는 용거(龍車)를 타고 아침에 지상에 내려와서 인간을 위하여 정사를 보살피다가 해질녘이면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고는 하였다고 전하여져 있다.
하늘에 근원을 둔 초인적 신격으로 해모수가 신앙되고 있음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지만, 이같이 뜻대로 천상과 지상을 내왕하는 천신다운 상은 아들인 주몽(朱蒙)과 그리고 손주인 유리(類利, 瑠璃王)에게까지 이어져 전하여지고 있다.
주몽은 인마(人馬)를 타고 천지를 내왕하였고, 유리는 창틀을 타고는 해의 높이까지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 전하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해모수와 주몽, 그리고 유리 등 조손(祖孫) 3대에 걸친 우주여행의 주지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른바 입무절차(入巫節次)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천계여행’의 주지와 대응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우, 하늘에서 내림한 환웅(桓雄) · 수로 · 혁거세 등이 역시 우주여행이 가능한 능력을 갖춘 존재로 부각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상고대사회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천신으로는 평안남도 순천군 북창면 북창리에서 발견된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에서 지신과 짝지어져 그려진 천왕이 있다. 상투머리를 하고 긴 깃발을 든 채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나는 남성상이 곧 천왕이다.
상고대 왕조신화가 천신의 내림굿을 그 기본 줄거리로 삼고 있음과 함께 후대에 까지 전하여진 마을공동체의 집단의례인 별신굿 또한 마찬가지로 신의 내림굿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일부 지방의 별신 곧 촌락수호신 가운데서도 천신의 존재가 유추될 수 있을 것이다.
왕국의 시조와 씨족의 시조가 하늘에서 내림한 천신이라는 관념은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지엄하고도 지고한 운명이며, 이 법이 하늘에서 유래하고 따라서 지상의 인간은 하늘의 뜻에 순명(順命)하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명제를 자연스럽게 파생하기에 이른다.
지상의 모든 것을 위한 지상(至上)의 지배자 · 관리자로서 천신이 군림하게 되는 것이니, 이 같은 관념은 당연히 ‘하늘이 내린 통치자’, ‘하늘 그 자체인 왕’ 등등의 사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왕권의 천부설(天賦說)은 유교를 기다려서만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것은 역대 왕자(王者)들의 상(像)을 거쳐서 천도교를 비롯한 후세의 여러 신흥종교 내지 민족신앙에서 보게 되는 상제(上帝) 또는 천군(天君)의 개념, 또는 천운(天運)의 개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반 민속신앙에서 막연하게 ‘하나님’이 기축(祈祝)될 적에도 이 오랜 관념들이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 천도교 · 시천교(侍天敎) · 상제교(上帝敎) 등 신흥종교의 교파이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
한편, 조선왕조에서는 국가기관인 소격서(昭格署)에서 관장하는 태일전(太一殿)에서 칠성제수(七星諸宿)를, 삼청전(三淸殿)에서 옥황상제를 섬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다른 경우, 예컨대 지신숭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신숭앙에서도 민관(民官) 양분현상이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토록 유래가 오래된 만큼 오늘날에 이르도록 민간신앙 · 속신 또는 이른바 민속신념 등에 걸쳐서 천신은 널리 숭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간단한 고사나 비념(축원하는 의례)에서 ‘천지신명’에게 빈다든지,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라든가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라는 민속신념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일반인의 생활신조나 종교심성 속에 깊이 침윤하고 있는 천신의 존재를 유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