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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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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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물이나 자연력을 관장한다는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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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자연신은 자연물이나 자연력을 관장한다는 신(神)이다. 자연신은 대체로 인격을 갖춘 의인화된 신의 모습으로 신앙의 대상이 된다. 간혹 자연물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정령(精靈)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연신의 종류는 대개 천상신, 산신, 지신, 수신, 화신, 암석신, 수목신, 동물신 등을 들 수 있다. 무속 신앙에서 총 273종의 무신 가운데 173종이 자연신으로서 전체의 63.6%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 민가의 집안에는 가신, 집 밖에는 마을신을 모시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자연신이었다. 자연신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근하였던 신격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정의
자연물이나 자연력을 관장한다는 신(神).
내용

이들 자연신은 대체로 인격을 갖춘 의인화된 신의 모습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데, 간혹 자연물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정령(精靈)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신을 믿어온 역사는 아주 오래 되는데, 그 자연신의 종류는 대개 천상신 · 산신 · 지신 · 수신 · 화신 · 암석신 · 수목신 · 동물신 등을 들 수 있다.

첫째로 천상신을 보면, 천신과 일월신을 들 수 있다. 천신은 단군신화(檀君神話)환인(桓因), 김수로왕신화(金首露王神話)동명성왕신화(東明聖王神話)의 황천(皇天) 등에 이미 인격화된 최고의 자연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고대의 여러 나라들이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다는 기록에도 천신 신앙은 잘 나타나 있다.

이 천신 신앙은 그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데, 고소설 등에 흔히 등장하는 ‘하ᄂᆞᆯ님’이 바로 천신이다. 또한, “하늘이 무심치 않으셔서…….”, “하느님 맙소사.” 등의 말에서도 우리나라 사람의 뿌리깊은 천신 신앙이 잘 드러난다.

일월신은 『수서(隋書)』의 신라전에 신라가 정월에 일월신을 모셨다고 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 고구려가 영성(零星)을 제사지냈다고 하는 데에서 이미 나타난다. 그리고 민간신앙에 의하면 북두성(北斗星), 곧 칠성신(七星神)은 육아 및 수명장수를 맡는다고 믿어진다.

둘째로 산신을 보면, 단군조선을 비롯하여 가야 · 신라 등의 개국신화에서 환웅(桓雄) · 김수로왕 · 박혁거세(朴赫居世) 등은 모두 하늘로부터 산꼭대기를 거쳐 땅으로 내려온다. 이로써 산이 신성시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단군이 아사달의 산신이 되고, 신라의 석탈해(昔脫解)가 토함산신이 되는 것 등을 볼 때 당시에 이미 산신이 인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보다도 특히 신라에서는 산신 신앙이 도타워서 삼산오악신(三山五岳神)을 제사냈는데, 『신당서(新唐書)』 신라전에서도 신라가 산신을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신라는 이 밖에도 선도산(仙桃山) · 운제산(雲梯山) · 치술령(鵄述嶺)에는 성모신(聖母神)을 섬겼는데, 이로써 산신을 여신으로 보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중국의 여러 동이전에는 예(濊)가 산천을 중히 여기고 호랑이를 모셔 사당을 짓고 신으로 삼는다고 한 기록이 있는데, 이로써 그 시대에 이미 호랑이가 산신으로 신앙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사기』를 보면 김유신(金庾信)이 단석산(斷石山)에 들어가서 수도할 때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삼국을 통일할 비법을 전해주었다는데, 여기서는 산신이 노인으로 인격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려태조「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자연신신앙을 강조함으로써 각지의 명산에는 대개 작위를 봉하고, 녹미(祿米)를 세급(歲給)하였으며, 산신당을 두고 무당에게 받들게 하였다. 또, 조선에서도 전국의 명산신(名山神)에 호국지신을 봉하고 각 주 · 군에도 진산(鎭山)을 두어 받들게 하였다. 민간신앙으로는 대개 마을 뒷산 중턱에 산신을 모신 산신당을 두고 모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셋째로 지신을 보면, 조선 태조 때부터 사직단(社稷壇)을 만들어 토지신인 태사(太社)를 모셔왔다. 또, 민간에서는 한 집안의 터를 맡아서 제액초복(除厄招福)하여주는 터주와 한 마을의 터를 맡아서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 · 골맥이 · 부군 등의 동신을 모셔왔다.

넷째로 수신을 보면, 동명왕신화에 이미 하백(河伯)이 인격화된 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삼국시대에 각 나라에서는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신과 아울러 강과 바다에도 제사를 지냈는데, 이러한 전통은 고려와 조선시대까지도 이어져 내려온다. 그런데 수신의 모습으로는 수신과 동물신의 복합성격인 용신이 가장 흔한데,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동해룡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같은 신라에서 수로부인은 해룡에게 납치되어간 일이 있고, 또 처용(處容)은 해룡의 아들로서 경주에 와서 사람들과 함께 살기도 하였는데, 이로써 용신은 인격화된 모습으로 신앙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간에서도 바닷가 어촌에서는 용신당을 두고 풍어제나 용신제를 지냈으며, 선원들도 뱃길이 평안하기를 용왕에게 빌었다.

다섯째로 화신을 보면, 민간에서 부엌의 신, 육아의 신으로 모시는 조왕신(竈王神)이 대표적이다. 여섯째로 암석신을 보면, 『삼국사기』부여금와왕(金蛙王)이 큰 바위 아래에서 금개구리 형상으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해동이적(海東異蹟)』에는 고구려 동명성왕이 조천석(朝天石) 속의 기린굴(麒麟窟)을 통하여 하늘을 오르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고대부터 큰 바위를 신성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민간에서는 자식 또는 아들을 못 낳은 부인들이 큰 바위를 기자(祈子)의 대상으로 삼는다. 선바위 · 선돌 · 남근석(男根石) · 자지석(子持石) 등으로 불리는 바위는 남자의 성기를 닮은 데서, 그리고 공알바위 · 처녀바위 등으로 불리는 바위는 여자의 성기를 닮은 데서 기자의 대상이 된다. 또한, 말바위 · 붙임바위 등으로 불리는 바위는 성교행위를 모방하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바위의 힘을 빌려 낳은 아이에게는 그 바위의 자식이라고 하여 그 뒤에도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일곱째로 수목신을 보면, 단군신화의 신단수(神壇樹)가 이미 신성한 나무로서 믿어졌음을 보여준다. 민간에서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목(堂木)이나 당숲이 서낭당과 함께 있어서 신성시된다. 또, 나무는 그 나무에서 또는 그 가까이에서 죽은 원혼이 있을 경우 귀신이 붙은 나무라 하여 두려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동물신을 보면, 단군신화에서 이미 곰〔熊女〕이 단군의 어머니로서 신성시되고 있으며, 부여의 금와왕은 금개구리 형상의 인물로서 왕이 되고 있다. 또, 예에서는 호랑이가 신으로 받들어졌으며, 신라에서도 「김현감호(金現感虎)」라는 이야기에서 보듯이 호랑이가 사람을 도와주는 신령한 동물로 믿어지고 있었다. 민간에서는 가신으로 ‘업’이 있는데, 이것은 구렁이나 족제비의 화신으로서 집안의 재복(財福)을 맡아본다.

한편, 무속신앙에서 자연신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현재 조사되어 있는 총 273종의 무신(巫神) 가운데 173종이 자연신으로서 전체의 63.6%를 차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지신은 전체 무신의 9.8%, 산신과 수신은 각각 9.5%, 그리고 천상신은 4.9%를 차지하고있다. 무속에서 이들 자연신의 위계질서를 보면, 천상신은 상층신, 산신 · 지신 · 수신 등은 중층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옛날 우리나라의 전통민가는 집안에는 가신, 집밖에는 마을신을 모시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자연신이었다. 따라서, 자연신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근하였던 신격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韓國의 鄕土信仰(張籌根, 乙酉文化社, 1975)
韓國巫俗硏究(金泰坤, 集文堂, 1980)
韓國民俗大觀 3-民間信仰·宗敎-(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
韓國民間信仰硏究(金泰坤, 集文堂, 1983)
韓國民俗學槪論(朴桂弘, 螢雪出版社,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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