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석은 민간에서 숭배 대상으로 전승되어온 남자 성기 모양의 돌이다. 자지바위, 좆바위, 남근석, 돛대바위, 삿갓바위, 총각바위, 아들바위, 말바위, 장수바위, 소좆바위, 말좆바위, 기자석(祈子石)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남자의 생식기 모양을 조각하여 세우거나, 비슷한 형태의 자연 암석을 남근석이라 한다. 남근숭배 신앙은 남자의 성기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원초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기자(祈子)나 풍년, 풍어, 자손 만복 등을 기원하고, 질병이나 악신(惡神)으로부터 자신과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남자의 생식기를 인위적으로 조각하여 세우거나 비슷한 형태의 자연암석을 대상으로 하여 기자(祈子)나 풍년 · 풍어 · 자손만복 등을 기원하고, 질병이나 악신(惡神)으로부터 자신과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 민족고유신앙인 남근숭배의 직접적인 신앙물이다.
남근숭배신앙은 인류의 선사시대부터 남자의 성기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원초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어, 자손번성이나 종족보존, 그리고 풍부한 생산력의 기원, 제재초복(除災招福)을 위하여 숭배되고 신앙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근석이라 할 때 그 형태는 대개 선돌[立石]에다 성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 가장 많고, 때로는 거기에 조각을 가하여 남근과 비슷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 밖에 여성기(女性器) 형태의 암혈(巖穴)이나 암석과 마주하는 곳에 자연암석 상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한국의 성신앙현지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전국 120여개 소의 성기신앙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경상남도 울주 암각인물화(巖刻人物畫), 신라 토우(土偶)와 뱃사공토기의 남근, 안압지 출토 목제남근 등 신라시대와 통일신라, 그리고 조선시대 순창(淳昌)의 남근석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의 역사에 걸쳐 있다.
남근석만으로 한정지어볼 때 불리는 명칭은 성기명(性器名)을 그대로 차용해서 붙인 자지바위 · 좆바위 · 남근석 등이 있고, 은유적 표현을 써서 돛대바위 · 삿갓바위, 이 밖에 총각바위 · 아들바위 · 말바위 · 장수바위 · 소좆바위 · 말좆바위 · 기자석(祈子石) 등 그 수를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데 모두가 남성성기와 관련된 이름들이다.
남근석의 위치는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개 입석의 형태일 경우 마을 입구나 앞에 세워져 마을제사[洞祭]시에 신체(神體)로 받들어지거나 부녀자들이 자식 가지기를 바라는 기원의 대상처가 되기도 한다. 또한 산기슭이나 산정상 등 후미진 곳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석들도 역시 기자나 개인의 소원성취를 바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 성기암(性器巖)에 대한 신앙형태는 동제신(洞祭神)의 신체로서 동제 복합문화를 이루고 있으나, 내면적으로 부여되는 의미는 마을의 안녕과 농사풍년, 풍어, 해운안전, 그리고 마을경계, 액운방지, 풍수비보 등 수호신으로서의 기능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을사람들의 각별한 보호 속에 다양한 금기(禁忌)들이 수반되고 있다.
또한 이들 남근석은 마을의 풍기순화(風氣醇化)를 위하여 음란(淫亂)을 막고, 청춘남녀의 순조로운 결합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한 관계로 남근석의 훼손은 물론 욕설이나 방뇨,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 등 대함에 있어 조심스런 언행이 뒤따른다. 특히 득남이나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부녀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기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상에서 지적했던 다양한 의미 외에도 지석묘(支石墓)와 동반된 선사시대의 입석, 그리고 묘 앞에 세우는 망주석(望柱石) 등은 남성성기의 상징적 의미로서 망자(亡者)에 대한 저승세계에서의 부활을 염원하고, 자손만복과 번창을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이 있다. 이는 바로 선사시대 이래 비롯된 민족 고유신앙의 지속적인 전승의 일면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