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방에서는 ‘세존(世尊)단지’·‘시조단지’, 호남지방에서는 ‘제석(帝釋)오가리’라고도 한다.
영남지방에서는 단지 안에 매년 추수 때마다 햅쌀을 정성스럽게 갈아 담는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맏아들 집에서 모시는데, 대개 안방 윗목의 시렁 위에 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상당세기’라고 부르는 백지를 넣어둔 조그마한 대바구니가 한 개 이상 여덟개까지 놓이는 수가 많다.
이 때, 시조단지는 먼 조상이라는 관념의 상징물이 되고 조상당세기는 사대봉사(四代奉祀)의 신주격인데, 내외를 함께 제사하면 4개, 내외 각각이면 8개까지 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종손이나 장손들이라고 해서 실제로는 누구나 다 사당(祠堂)을 짓고 신주를 모실 수는 없으니, 그 사당의 약식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호남지방에서는 장손집에서 제석오가리와 신주단지(또는 몸오가리)를 모신다. 오가리란 오지그릇의 단지나 항아리를 가리키는 사투리이다.
이 때, 제석오가리는 영남지방의 세존단지나 시조단지와 같은 먼 조상신의 상징물이어서 역시 한 개이고, 신주단지는 사당의 신주격이기 때문에 8개까지 놓일 수가 있다. 이러한 시조단지들은 조상할매라 부르는 경우들이 적지 않아 여신관념이 강한 편이다. 따라서 시조단지에는 여신숭배·조령(祖靈)숭배, 그리고 곡식을 조령의 상징물로 숭상하는 곡령(穀靈)숭배가 다 한데 어울려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이 단지들을 세존단지니 제석오가리니 해서 그 제물로 술과 고기를 놓지 않는 불교적 성격이 있으며, 신주나 사당의 약식이라는 유교제례적인 성격도 강하다. 여기서, 유교제례적 성격은 조선시대 이래의 유교제례의 반영임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불교적 성격은 또한 삼국시대 이래 현재까지 불교신앙의 반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조상단지신앙은 원초이래 우리 나라 종교사의 총집약체의 상징물이라는 느낌이 뚜렷하다. 그것은 어떠한 종교이건 다 수용하여온 너그러운 포용의 정신을 지닌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평화로운 농경문화성이 짙은 우리 나라 조상숭배의 오랜 역사를 말하여주는 것이다.
조상단지는 장손집에서만 은밀한 안방구석에 모시는 것이고, 그나마 지금은 소멸되어가는 상황이어서 그 실제를 많이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영남지방과 호남지방 이외는 조사자료들도 아직은 뚜렷한 것이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