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지의정부사, 대사헌,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88년 유배에서 풀려나 내부부령(內府副令)·예문응교를 거쳐 우상시(右常侍)가 되었으며, 1391년(공양왕 3) 좌대언(左代言)이 되었다. 이어 지신사(知申事)에 올라 감사를 맡았으나, 이 해에 장류(杖流)된 김진양(金震陽) 사건에 연루되어 결성(結城: 충청남도 홍성)에 다시 유배되었다.
조선조 건국 후 1398년(태조 7) 이조전서(吏曹典書)에 등용되어 동지중추원학사(同知中樞院學士)에 올랐다. 1400년(정종 2) 첨서삼군부사(簽書三軍府事)로 전위사(傳位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02년(태종 2)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에 올라 하륜(河崙)과 함께 등극사(登極使)의 부사(副使)로서 명황제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 명에 다녀왔다.
그 때 고명(誥命: 명에서 조선의 왕을 인정하는 승인서)과 인장(印章: 옥새)을 고쳐 주도록 주청(奏請)하였다. 뒤에 그 공로로 토지와 노비가 하사되었고 정헌대부에 올랐다. 그 해 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을 겸했으며, 1403년 예문관대제학이 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하륜 등과 함께『삼국사략(三國史略)』을 찬수했고, 소설『저생전(楮生傳)』을 지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많은 시를 남기고 있으며, 유저로는『쌍매당협장문집(雙梅堂篋藏文集)』이 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용재집(容齋集)』
- 『쌍매당협장문집(雙梅堂篋藏文集)』
- 『해동잡록(海東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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