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윤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승정원주서, 이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윤지(胤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4년(숙종 10)
사망 연도
1741년(영조 17)
본관
진주(晉州)
주요 관직
승정원주서|이천부사
관련 사건
이인좌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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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정원주서, 이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윤지(胤之). 첨지중추부사 강주(姜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강백년(姜栢年)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강현(姜鋧)이며, 어머니는 조위봉(趙威鳳)의 딸이다. 화가로 이름을 날린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당시 과장(科場)에서 아버지의 분부에 따른 시험관의 부정이 밝혀져 변방에 유배되어 충군(充軍)되었다. 그 뒤 1715년에 풀려나고, 1721년(경종 1)에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천거되었으며, 1728년(영조 4)에는 이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는데, 적괴 서호(瑞虎)를 포박하여 공을 세웠으나 체포된 난도(亂徒)들의 국문중 그들과 내통하였다는 자백을 받아 파직, 하옥 후 또다시 유배되었다.

그 뒤 1738년에 풀려나 1750년에 직첩을 환급받았다. 1763년에 당시 적괴 정세윤(鄭世胤)이 그와 이름이 같았던 까닭으로 억울하게 벌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져 신원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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