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고종 3)에 통진부사를 지냈으며, 1869년에는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경기중군이 되었다. 이때 신미양요가 일어남에 정부에서는 수전에 뛰어나고 지모가 있는 양주태로 하여금 병선을 이끌고 진무중군(鎭撫中軍)에 합류하여 임기응변하도록 하였다.
신미양요가 끝난 직후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76년 일본이 군함을 앞세워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고자 왔을 때, 당시 어영중군으로서 금위중군 신숙(申橚)과 함께 훈국보군(訓局步軍) 및 어영금영보군(御營禁營步軍) 각 일초(一哨), 표하군(標下軍) 30인을 거느리고 행주항(幸州項)을 수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