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척화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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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척화비
대원군 척화비
근대사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세력의 배척을 위해 세운 척화비.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양산 척화비(大院君斥和碑)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79년 05월 02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로 78 (북정동, 양산시립박물관)
목차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세력의 배척을 위해 세운 척화비.
내용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가로 25.5㎝, 세로 21㎝, 높이 144㎝로 화강석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이를 자손만년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지어 신미년에 세움(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이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이 비의 설립배경은 외척의 세도정권을 약화시키고 새롭게 실권을 쥔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외정책 변화로 나타난 산물이다. 흥선대원군 정권은 국내적으로 국정쇄신을 통한 왕권강화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대외적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제국에 대해 점차 쇄국정책으로 치달았다.

서구 제국의 천주교 승인과 통상 개방 압력은 흥선대원군 정권으로서 국내문제와 맞물려 복잡해진 난제를 해결해야만 하였다. 결국 대외문제는 병인, 신미양요라는 군사력 대결을 낳았으며, 나아가 쇄국정책으로 확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흥선대원군 정권은 자신들의 쇄국 의지를 모든 국민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강화할 목적으로 전국의 중요 통로와 지점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이 척화비는 방형(方形)으로 만든 돌을 상단부문의 양 모서리를 잘라내어 만든 것으로 형태면에서 특색이 있다.

참고문헌

『양산군지(梁山郡誌)』(양산군지편찬위원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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