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조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밤안개」·「맨발의 청춘」·「안개」 등을 만든 작곡가. 색소폰연주자.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87년 8월 31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32년 5월 1일
  • 출생지경상남도 남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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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밤안개」·「맨발의 청춘」·「안개」 등을 만든 작곡가. 색소폰연주자.

내용

경상남도 남해 출생. 진주중학교 재학시절 가요작곡가 이재호(李在鎬)에게 음악을 배웠다. 1952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였으며 테너색소폰 연주자 엄토미(嚴吐美)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인 연주법을 사사했다.

1958년 한양대학교 졸업 후, 서울시청 토목과에 취직하였고, 이봉조악단을 조직하여 주한미군 각 부대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미국의 재즈음악에 열중하였다. 가사를 쓴 번안곡 「밤안개」라는 노래를 현미(玄美)에게 부르게 하여 가요작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4년 MBC TV에서 주최한 전국경음악경연대회에서 이봉조악단이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 극영화 「맨발의 청춘」으로 청룡영화상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그해 말 동양TV방송국이 개국할 때 전속악단장이 되었다. 1970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안개」(정훈희 노래)로 입상하였고, 1971년 이 공로가 인정되어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그리스가요제에 참가하여 1971년에 「너」(정훈희 노래), 1973년에 「나의 별」(현미 노래)로 입상하였다. 또한 남미 칠레가요제에 참가하여 1974년 「좋아서 만났지요」(정훈희 노래), 1975년 「무인도」(김추자 노래), 1979년 「꽃밭에서」(정훈희 노래)로 수상하였다. 1980년 KBS 전속악단장, 1987년 서울올림픽 문화행사 공연분야 준비자문위원을 지냈으며, 많은 연주 음반과 300여곡의 가요곡을 남겼다.

참고문헌

  • - 『한국 가요사 2』(박찬호, 미지북스, 2009)

  • - 「한국연예인물사」(황문평, 『예술세계』10,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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