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행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평안도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정보(正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793년(정조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평안도사(平安都事)|대사성
  • 출생 연도1738년(영조 14)
  • 출생지대흥(大興: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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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평안도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보(正甫). 대흥(大興) 출신. 김수민(金壽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성도(金成道)이고, 아버지는 부제학 김시찬(金時粲)이며, 어머니는 이채조(李采朝)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3년(영조 49)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의리감이 깊어 교리로 있을 때 친구인 홍상간(洪相簡)이 역적으로 죽음을 당하자 그 시체를 거두어 매장하였다. 이로 인해 유배를 당하였으며, 1778년(정조 2)에 특별 방면되었다.

그 뒤 1791년 평안도사(平安都事)에 임명되어 평안도의 폐해를 상소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에 파직당하였다가, 1793년 황해도관찰사로 기용되어 재직 중 임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상소 내용 : 『정조실록』 33권, 1791년(정조 15) 9월 28일. "평안 도사 김방행이 충장위와 충찬위의 공납을 면제해주기를 청하다"

  • 주3

    : 임지에서 사망 : 『정조실록』 37권, 1793년(정조 17) 4월 2일. "황해도 관찰사 김방행이 임지에서 죽자 이조승으로 대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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