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는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 세워진 신도비이다. 1409년에 조선 시대 왕릉에 최초로 건립된 것으로, 201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태조의 탁월한 무공과 정치력에 대해 서술한 권근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변계량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신도비는 화려하고 장엄한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용의 형상을 새긴 비석 머릿돌 양식을 갖추고 있다. 현존 왕릉 신도비 중 유일하게 건립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조선 초기의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 세워진 신도비.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신도비 비신의 뒷면에는 변계량이 짓고 성석린이 쓴 비음기가 새겨져 있다. 비음기에는 태종의 특명으로 51명의 개국공신을 비롯하여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공을 세운 22명의 정사공신(定社功臣)과 1400년(태종 원년) 태종의 즉위에 공을 세운 43명의 좌명공신(佐命功臣) 등 총 116명의 공신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태조의 건원릉 신도비에 태종을 도와 공신이 된 인물들의 명단을 새긴 것은 태종의 왕위계승 정통성을 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비음기 말미에 성석린이 글씨를 썼을 때의 나이가 72세였다는 특이한 기록이 남아 있다. 태종은 글씨를 쓴 공로를 표창하고자 성석린에게 안마(鞍馬)를 하사하면서 칠십이 넘었음에도 필력이 매우 뛰어나니 후세 사람이 보면 크게 탄복할 것이라며 칭찬하였다고 한다.
특징
건원릉 신도비 이수는 태종무열왕릉비 이수 구도와 거의 동일하다. 용이 비신 상단을 입에 꽉 물고 승천하는 형상을 표현하였다. 태종무열왕릉비 이수가 좌우 각각 3마리씩 모두 6마리인 반면, 건원릉 신도비 이수는 좌우 각각 2마리씩 총 4마리인 점이 다를 뿐이다. 이수 가운데에 공간을 마련하여 비의 명칭을 전서(篆書)로 쓴 점 또한 두 비가 동일하다. 건원릉 신도비의 이수와 비신은 한 덩어리의 대리석을 다듬어 만들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귀부는 수많은 연잎이 거북이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거북이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어 친근감을 준다. 몸체를 두른 귀갑(龜甲) 밖에는 꼬리와 네 발이 나와 있고 귀갑 위에 마련된 비좌(碑座) 위로 비신이 세워져 있다. 귀부 아래에는 직사각형의 복련(覆蓮) 대좌(臺座)가 설치되어 더욱 위엄있게 보인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건원릉지(健元陵誌)』(1910)
- 『건원릉중수도감의궤(健元陵重修都監儀軌)』(1764)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Ⅰ』(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 「조선시대 능비의 건립과 어필비의 등장」(황정연, 『문화재』42-4,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 「조선시대 능묘비에 관한 연구」(이민식, 한성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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