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책봉 배경
1398년 8월 26일, 이방원은 군사를 일으켜 정도전 · 남은(南誾) · 심효생(沈孝生) 등을 제거하였다. 이복동생 이방석도 세자 자리에서 쫓아내 유배를 보냈으며 도중에 죽였다. 결국 태조는 둘째 아들 이방과(李芳果: 정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는데, 이후 정치적 실권은 국왕 정종보다 그의 동생 이방원에게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책봉 내용
이상의 정사공신에는 13명의 개국공신과 4명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새로 공신에 책봉된 이들 중에는 이방의 · 이방간 · 이방원 3형제, 이양우 · 이복근 · 심종 · 이거이 · 이백경 · 민무구 · 민무질 등의 왕실 친인척이 있었다. 즉, 일부의 개국공신과 왕실 구성원 등이 정사공신에 책봉되었고, 정종이 즉위한 후 이방원은 정사공신들을 중심으로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포상
2등 공신도 공적을 기록한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또한 부모 · 처에게 2등을 올려 봉작 증직하고, 그 직계 아들은 2등을 올려 음직을 제수하되, 직계 아들이 없으면 조카나 사위에게 1등을 올려주었다. 그 자손 역시 정안에 정사 2등 공신 아무개의 자손임을 밝혀 우대하고 죄를 범해도 용서해 주도록 하였다. 상으로 전 150결, 노비 15구, 내구마 1필, 금 또는 은요대 1개, 표리 각 1단, 구사 5명, 직배파령 8명을 하사하였다.
책봉 이후 변화
참고문헌
원전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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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김윤주, 「조선 초 공신 책봉과 개국 · 정사 · 좌명공신의 정치적 동향」(『한국사학보』 35, 고려사학회, 2009)
- 김윤주, 『조선 태조∼태종대 정치와 정치세력』(서울시립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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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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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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