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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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 현왕 이외에 전왕이 살아 있을 경우 전왕을 부르던 왕실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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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조시대 현왕 이외에 전왕이 살아 있을 경우 전왕을 부르던 왕실호칭.
개설

현재 왕보다 위의 왕이라는 의미로, 대체로 정치혼란기에 그 사례가 보인다.

내용

왕은 즉위한 이후 사망할 때까지 군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또한 절대권력자인 왕은 한 명만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같은 시대에 두 명의 왕이 존재하면 왕조의 권력과 국론이 양분되기 쉬웠다. 따라서 유학자들은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땅에는 두 명의 왕이 있을 수 없다고[天無二日 土無二王] 하여 왕의 독존(獨尊)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현실은 언제나 원칙대로만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왕을 능가하는 강자가 나타나 왕위를 찬탈하거나, 후계왕의 정치경험을 위해 선위할 경우 상왕이 존재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太祖), 정종(定宗), 태종(太宗), 단종(端宗), 고종(高宗)이 상왕으로 있었는데, 이 기간은 대체로 정치적 혼란기에 해당한다.

태조와 정종은 태종이라는 강자에게 왕권을 빼앗기다시피 했고, 단종도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했으며, 고종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양위되어 상왕이 되었다. 다만 태종은 그의 후계자 세종의 정치경험을 위해 스스로 양위하고 4년 간 상왕으로 있으면서 세종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태조는 왕위에서 물러난 뒤 10년을 더 살았고 정종은 19년, 태종은 4년, 그리고 단종은 2년을, 고종은 3년을 더 살았다. 이 기간이 바로 이들이 상왕으로 존재하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상왕은 정치현실에서 일체 손을 떼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상례였다. 따라서 상왕이 거처하는 상왕전(上王殿)에는 궁녀와 내시, 그리고 호위병 등이 배속되었으나 양반관료는 배치되지 않았다.

정치현실에서 손을 뗀 상왕에게 군국기무를 아뢰고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상왕이 실세이거나, 현왕이 상왕을 예우하여 중요대사를 여쭙는 경우는 예외라 할 수 있다.

상왕이 존재할 경우 신료들은 두 왕 사이에서 처신하기 힘들었다. 또한 상왕으로 밀려난 왕도 신명을 보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상왕은 자의든 타의든 현왕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약간의 정치적 언동은 바로 복위기도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상왕을 추종하는 세력이 복위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따라서 오직 한 명의 왕만이 존재해야 할 왕조시대에 상왕이 존재하던 시기는 바로 위기상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정종실록(正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고종실록(高宗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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