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공족보 ()

근대사
문헌
1931년에서 1933년에 걸쳐 작성된 이왕가(李王家)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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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1년에서 1933년에 걸쳐 작성된 이왕가(李王家)의 족보.
개설

8책이다. 일제강점기에 이왕가의 족보가 왕족보(王族譜)와 공족보(公族譜)로 된 이유는 국권 상실과 함께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로 격하되고, 그 구성원들이 왕작(王爵)과 공작(公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제는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합병하면서 대한제국 황실을 일본 천황가의 하위부속인 이왕가로 격하하고 이를 일본 궁내부의 관할 하에 두었다. 이는 이왕가의 구성원들을 일본 천황의 친족으로 대우함으로써 일면 회유·포섭하고 일면 관리·통제하려는 조치였다.

편찬/발간 경위

일제는 대한제국 황실을 일본 천황가에 편입시킬 때 자신들의 왕실봉작제를 이용했다. 즉 이왕가의 중심인 고종·순종 등에게는 왕 작위를 수여하고 이에서 벗어나는 친족들에게는 공 작위를 수여했던 것이다.

왕족보와 공족보는 1931년에 작성되기 시작해 1933년에 완성되었다. 1931년 일제는 조선시대 이래의 왕실관계 족보를 수정하면서 새롭게 이왕가 족보를 편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이유는 순종이 사망하고 3년 상이 끝난 후의 시점에서 대한제국기의 황제체제에 입각해 작성되었던 기존의 구황실 족보를 이왕가의 현실적 위치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왕·공족보가 작성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① 1931년 가을 : 이왕직의 주전과장(主殿課長) 이성묵(李聖默)이 일본에 출장 가서, 궁내성(宮內省) 도서료(圖書寮)의 사무관 영목중효(鈴木重孝)에게 왕공족보 작성에 필요한 자료 협조 요청, ② 1932년 3월 3일 : 영목중효가 요청받은 자료를 이왕직에 발송, ③ 1932년 3월 7일 : 영목중효가 발송한 자료를 주전과에서 수령, ④ 1932년 4월 18일 : 영목중효가, 그가 보낸 자료 중의 의문사항을 문의한 이성묵에게 회답, ⑤ 1932년 4월 21일 : 주전과에서 영목중효의 회답서를 수령, ⑥ 1932년 9월 30일 : 왕공족보 8책의 장정 완료, ⑦ 1932년 12월 27일 : 왕족보 3책에 해당 사항 수록, ⑧ 1932년 1월 12일 : 공족보 5책에 해당 사항 수록, ⑨ 1933년 5월 1일 : 도서두(圖書頭) 도부신(渡部信)이 왕공족보 부본 8책을 이왕직에게 발송, ⑩ 1933년 5월 10일 : 이왕직 장관 소전치책(篠田治策)이 왕공족보 부본 8책을 수령했다는 회답서 발송.

내용

1931년에서 1933년에 걸쳐 작성된 왕공족보는 이전의 조선왕실 족보와는 형식이나 수록내용 및 작성원칙 등에서 판이하게 다른데, 무엇보다도 왕·공족보는 일본어로 기록되어 있다.

형식적인 면을 본다면, 왕족보의 경우는 ‘왕’을 기준으로 그의 생년·혼인·이력 등을 세로로 죽 내려쓰고 있다. 그리고 왕의 부인은 ‘왕비’ 항목으로 수록되고, 그 외에는 직계 자손들이 왕족으로 수록되어 있다.

공족보의 형식도 왕족보와 같다. 즉 ‘공’을 기준으로 그의 생년·혼인·이력 등이 세로줄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공의 부인은 ‘공비(公妃)’ 항목으로 수록되고, 그 외에는 직계 자손들이 공족으로 수록되어 있다.

왕공족보는 특정 왕이나 공의 작위가 상속될 때, 상속인을 새로운 왕이나 공으로 하여 다시 족보를 작성한다. 예컨대 갑이 을의 공위(公位)를 상속하면 그는 을의 공족보에 공족(公族)으로 수록되어 있다가 새로 ‘을계(乙系) 몇세 갑 공록보(甲 公族譜)’라는 이름의 족보를 갖게 된다.

일본의 천황가족보를 직접 확인하지 못한 상태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왕가의 왕·공족보가 일본어로 작성되고, 그 형식이 위와 같이 된 이유는 일본의 천황가족보를 그대로 본땄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순종실록부록(純宗實錄附錄)』
『선원계보기략수정등록(璿源系譜記略修正謄錄)』
『열성황후왕후왕비세보수정시왕부서류(列聖皇后王后王妃世譜修正時往復書類)-부 왕공족보서류(附 王公族譜書類)-』
「이왕가(李王家)의 왕·공족보류(王·公族譜類)」(신명호, 『장서각도서해제』 2, 1997)
「일제하 이왕직(李王職)과 이왕가(李王家) 족보」(신명호, 『한국학대학원논문집』 11, 1996)
『秘書類纂 帝室制度資料』 上·下(伊藤博文, 秘書類纂刊行會 : 東京, 1936)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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