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제1차 왕자의 난을 도운 공으로 녹훈되었으나, 제 2차 왕자의 난 이후 유배 중인 이방간과 은밀히 사통한 것이 밝혀져 서인으로 강등된 문신·공신.
이칭
  • 이칭청원군(靑原君), 청원후(靑原侯)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제1차 왕자의 난|제2차 왕자의 난
  • 본관청송(靑松)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청원군(靑原君)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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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제1차 왕자의 난을 도운 공으로 녹훈되었으나, 제 2차 왕자의 난 이후 유배 중인 이방간과 은밀히 사통한 것이 밝혀져 서인으로 강등된 문신·공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할아버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고, 아버지는 좌정승(左政丞) 심덕부(沈德符)이다. 태조의 차녀 경선공주(慶善公主)의 남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98년(태조 7) 8월에 청원군(靑原君)으로 봉하여졌다가 그 해 다시 청원후(靑原侯)로 개봉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청원군으로 봉하여졌다.

같은 해 이방원(李芳遠)이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 고려 말의 구신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芳遠: 뒤의 태종)을 도와 난을 성공시킨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동복형제 사이에 일어난 이방간과 이방원의 싸움인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는 중립적인 처신을 하였기 때문에 무사하였다. 그러나 1416년(태종 16) 전주에 유배중인 이방간과 은밀히 사통하면서 선물을 받은 것이 탄로나, 벼슬이 깎이고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자원안치(自願安置: 스스로 안치형을 받음)되었다.

참고문헌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한국성씨대관』(최덕교·이승우, 창조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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