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

정치·법제
제도
1946년 2월 8일에 발족돼 1947년 2월까지 존재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기능을 수행한 북한 최초의 중앙정권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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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2월 8일에 발족돼 1947년 2월까지 존재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기능을 수행한 북한 최초의 중앙정권기관이다. 조선로동당 주도로 개최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 결과로 조직되었다. 위원장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추대되었다. 북한 전역을 포괄하는 중앙기구 역할을 하였다. 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으로 해체되었다. ‘민주기지론’의 구체화된 형태로서 북한사회를 통일적으로 이끄는 중앙권력기관, 즉 북한 정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
1946년 2월 8일에 발족돼 1947년 2월까지 존재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기능을 수행한 북한 최초의 중앙정권기관.
개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는 1946년 2월 8일에 조선로동당 주도로 개최된 〈북조선 각 정당 · 사회단체 · 각 행정국 및 각 도 · 시 · 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 회의 결과 조직되었고, 위원장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추대되었다. 이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7년 2월 21일에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개편될 때까지 북한 전역을 포괄하는 중앙기구 역할을 하였고, 김일성이 실질적으로 북한지역을 통치하는 지도자 역할을 했다. 1946년 말, 민주개혁이 완수되자 북한은 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수립하게 되는데, 이로써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해체되었다. 북한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자주적인 정권의 떳떳한 주인으로 되었으며 혁명과 건설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용

위원회의 강령으로는 완전한 독립국가 건설, 전 민족의 기본요구를 실현할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대중생활 확보 등을 내걸었으며, 당면과업으로 지방정권기관의 강화, 무상분배의 토지개혁 실시 준비, 생산기업소 발전 도모, 친일파 · 민족반역자 처단 등 11개조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 11개조의 강령에 입각한 당면과업을 해결하기 위해 3월 23일에 일제 잔재의 숙청, 국내 반동세력과의 투쟁, 기본권의 보장, 대기업의 국유화 및 개인 상공업의 장려, 지주의 토지 몰수, 8시간 노동제 확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20개 정강을 발표, 이후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김일성은 북조선임시위원회와 관련하여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동동맹에 기초하여 광범한 반제반봉건적민주력량을 망라하고 있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의거한 인민정권으로서 인민민주주의독재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변천과 현황

1946년 2월 5일 북한지역의 각 정당 및 사회단체로 구성된 발기위원회는 그간의 활동성과를 검토하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이틀 뒤인 2월 7일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기 위한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의 예비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 예비회의에는 북조선공산당 2명, 민주당 2명, 독립동맹 2명, 노동조합 2명, 여성동맹 1명, 민주청년동맹 1명, 종교단체 1명, 조소문화협회 1명 및 도․시․군 인민위원회 위원장들과 행정국 국장들이 참가하였다.

회의에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당면과업을 토의하고, 인민위원 선거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다음날 2월 8일에는 예비회의에 참석했던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 14인의 발기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한 ‘북부조선 각 정당․각 사회단체․각 행정국 급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확대회의’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각 정당․사회단체, 각 행정국,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를 대표하여 참가한 137명은 정당 대표 6명, 사회단체 대표 8명, 행정국장 11명, 각급 인민위원회 관련자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날 회의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할 것이 제안되었고,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설립될 수 있었다.

2월 9일 회의에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을 선거하였다. 그 결과 위원장 김일성, 부위원장 김두봉, 서기장 강량욱 등 3명으로 상무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그 외 보안국장 최용건, 산업국장 리문환, 교통국장 한희진(후임 허남희), 농림국장 리순근, 상업국장 한동찬(후임 장시우), 체신국장 조영렬, 재정국장 정진태(후임 박성규), 선전부장 오기섭(후임 리청원), 총무부장 리주연 그 외 박정애․무정․강영근․ 강진건․방수영․방우용․김덕영․리기영․홍기황․현창형 등 23명을 위원으로 선출하였다.

1946년 3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으며, 7월 30일에는 북조선남녀평등권법령을, 8월 10일에는 중요 산업국유화에 대한 법령을 각각 발표하였다. 1946년 11월 3일에는 북한전역에서는 인민위원회 선거가 실시되었고, 이로써 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의의와 평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위상과 성격에 대하여 연구자마다 ‘통일전선적 정권 형태’, ‘실질적 단독정권’, ‘새로운 공산국가’, ‘북한 중앙주권기관’, ‘분단정권’ 등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민주기지론’의 구체화된 형태로서 북한사회를 통일적으로 이끄는 중앙권력기관, 즉 북한 정부의 출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말대사전(증보판)2』(사회과학출판사, 2007)
『북한정치연사연구Ⅰ: 건당․건국․건군의 역사』(김광운, 선인, 2003)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1(박세길, 돌베개, 1988)
『백과전서』3(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집필자
오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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